땅끝 기행시-해남에서 온 편지(이지엽)

2012-07-27     해남우리신문
아홉배비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꾹꾹 쑤신다

아가 서울 가는 인편에 쌀 쪼간 부친다 비민하거냐만 그래도 잘 챙겨묵거라 아이엠 에픈가 뭔가가 징허긴 징헌갑다 느그 오래비도 존화로만 기별 딸랑하고 지난 설에도 안와브럿다 애비가 알믄 배 락을 칠 것인디 그 냥반 까무잡잡하던 낯짝도 인자는 가뭇가뭇하다 나도 얼릉 따라 나서야 것는디 모진 것이 목숨이라 이도저도 못하고 그러냐 안.
쑥 한 바구리 캐와 따듬다 말고 쏘주 한 잔 혔다 지랄 놈의 농사는 지먼 뭣 하냐 그래도 자석들한데 팥이란 돈부, 깨, 콩 고추 보내는 재미였는디 너할코 종신서원이라니… 그것은 하느님하고 갤혼하는 것이라는디… 더 살기 팍팍해서 어째야 쓸란가 모르것다 너는 이 에미더러 보고 자퍼도 꾹 전디라고 했는디 달구 똥마냥 니 생각 끈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이지엽 시인은 1958년 12월 25일 해남에서 출생해 성균관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2년 「촛불」로 『한국문학』 신인상을 수상했고 1984년 시조 「일어서는 바다」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했다. 1999년 「적벽을 찾아서」로 중앙시조대상을 수상했다. 이지엽은 자연과 삶이 교감하는 풍경을 세밀하게 그려내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