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기행시-대흥사 행(고정희)
2012-07-28 해남우리신문
이 적설 속에도
마을로 가는 길이
뚫려 있다
천 가람 문 닫는
이 적설 속에서도
피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려 있고
수미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려 있고
그대에게로 가는
길이 뚫려 있다
지상의 아우성 덮어주는 눈 속에서
황혼을 고요히 수락하는 마을들은
하늘 높이 저녁 연기 피워올리고
눈 덮인 적동백 아름드리 가지마다
우리 사는 뜻 시나브로 휘날리니
고맙구나
남도의 산자락에 굽이치는
기상이여
저 무연한 저녁 불빛이여
장작불 괄게 타는 아궁이에
우리 사랑 또한
이글이글 타오르니
고정희 시인(1948~1991)은 삼산면 송정리에서 5남 3녀 가운데 장녀로 태어났다.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1975년 시인 박남수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연가》, 《부활과 그 이후》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여성문학인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거쳐 여성문화운동 동인 ‘또하나의 문화’에서 활동했다. 1991년 6월 9일 지리산 등반 도중 실족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