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의 축복 엄마딸 지혜에게
2010-04-10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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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와 목련,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야 할 봄이 올해는 심상치가 않구나. 몇 달 전 너랑 함께 봤던 2012란 영화가 떠오르는 건 엄마의 기우일까.
너와 지우가 고1, 중1이 된지도 두달째구나.
어른들 말씀처럼 품안의 자식이라느니, 눈 깜짝할 새라느니 하는 말들을 새삼스레 요즘 엄마가 떠올리고 있구나. 네가 뱃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넌 온 세상의 축복으로 내게 다가왔단다. 뱃속에 있던 너에게 써왔던 일기는 지금도 잠자기 전에 가슴속으로 너에게 읊조린다. 우리 딸, 오늘 하루는 어땠니? 엄마는 오늘 이러이러 했는데… 슬펐어, 또는 기뻤어, 너라면 어쨌을까 하고 나도 모르고 되뇌이곤 하지.
너랑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은 기쁨이고 행복이었단다. 엄마같이 자기중심적이고 무작정 떠나기 좋아했던 사람이 너로 인해 매순간 미소가 지어지고 너그러워지고 세상과, 사람들과 화해하기 시작했단다.
딸 부잣집 장남에다 키도 작고 못생겼으며, 부자도 아니고 게다가 땅끝으로 시집간다고 반대가 심했던 광주할머니와의 화해도 너를 키우면서 가능했단다. 외동딸인 엄마에게 기대와 욕심이 많았던 광주할머니를 엄마는 그냥 속물취급하곤 했었지. 하지만 70이 다된 나이에도 수영, 요가, 노래교실, 한자에 영어까지 너무 재미있게 사시는 할머니의 열정이 지금의 나와 너를 있게 한 원동력이란 생각이 들어.
매순간 치열하게 살고 당당하고 재미있게 인생을 즐기시는 모습이 나에게도 발견되고 너에게도 강조하면서 할머니의 열정적인 피가 내 안에 흐르고 있음을 너로 인해 깨닫는단다.
그리고 할머니가 엄마에게 가졌던 욕심들을 내가 또 너에게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 본단다. 지나친 욕심으로 우울해질 때면 엄마는 너랑 함께 숫자를 새며 봤던 미황사의 일몰과 캄보디아의 프롬바겡 일몰을 떠올린단다. 그럼 거짓말처럼 지금 부리고 있는 욕심이 부질없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지. 내가 너의 참모습을 거부하고 세상의 잣대로 너를 힘들게 할 때 ,엄마에게서 할머니와 같은 욕심이 보이거든 엄마 눈을 들여다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하렴.
세상과 네 삶의 주인이 되고 매순간 자신을 믿고 사랑하며 당당히, 재미있게 살아라.
세상의 시선과 잣대보다는 네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네 영혼이 미소 짓는 삶을 살아라. 네가 아니면 아닌거야. 3번을 거듭 생각해도 지금 살아가는 네 모습이 즐겁고 행복하지 않다면 과감히 버려라. 인생은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더구나. 엄마가 생각할 땐 네 가슴이 뛰는지, 네 심장이 행복에 겨워 눈물짓는지, 그것만이 진실 같구나.
엄만 지금도 하루에 여러 번씩 하늘을 본단다. 너무 바쁘고 힘들게는 살지 말거라.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되 온전히 네 삶을 살도록 해라. 가끔 하늘도 올려다보고 들꽃에게 말도 걸어보고 주위의 모든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려무나.
언젠가 엄마가 너에게 물어봤지? 언제가 제일 재미있었느냐고? 넌 참 재치있고 당당하게 말했지 “엄마, 난 매순간을 즐기고 살아서 특별히 어느 한 순간이 즐거운 건 아니야”
항상 고맙고 사랑한다. 너에게 이 편지를 쓰면서 미소 짓는 엄마는 무지 행복 하단다. 이 행복을 주신 광주 할머니에게 오랜만에 전화해야겠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감기 조심하고 야영 잘 다녀오렴.
2010 4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