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

2012-10-26     해남우리신문

윤욱하(재경향우)


감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감나무는 고목이 되어 몸통 중간쯤에서 큰 가지 하나가 사분지 일가량 세로로 쪼개지듯 부러졌다. 부러진 자리에는 새까맣고 텅 빈 구멍이 있었다. 나는 그 안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여 가끔 감나무 아래서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러면 굴뚝새며 참새가 튀어나왔고 이따금 고양이도 어슬렁거리며 나왔다.
마을 사람들은 집을 지키는 구렁이가 사는 집이라고도 했다. 고목이라서 감은 많이 열리지는 않았으나 크고 맛이 좋았다. 또 쭉 뻗은 가지 끝에는 언제 지은 지도 모르는 까치집도 있었다. 어쩌다 감나무에서 까치가 아침부터 요란스럽게 울면 할머니의 눈길은 자꾸만 대문에 머물렀다.
이는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오신다는 속설에 대한 할머니의 강한 믿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큰 고모는 또 어김없이 삼 십리 먼 길을 머리에 인절미를 이고 오셨다. 할머니께 큰절을 하는 고모의 유난히 흰 머리카락이 할머니를 닮아 꼭 동생같다고 내가 철없는 농담을 하면 집안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고모는 열 살도 더 손아래 동생 되는 아버지에게 반말로 “동생 별 일 없었는가?”하고 수인사를 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무릎을 꿇고 큰절을 마치면 “이번에는 무슨 상을 탓느냐?”고 묻는 것으로 고모는 인사를 대신했다.
어느 해 늦가을,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 쯤으로 기억된다. 가족은 모두 벼 베기에 동원되어 한적한 오후, 할머니는 이제 서리도 내렸으니 우리 둘은 감을 따자고 했다.
나는 긴 장대로 전지를 만들고 감을 따기 시작했다. 그런데 손놀림이 서툴러 감이 전지에 걸려있지 않고 땅 바닥에 나뒹굴어 금이 가고 멍이 들었다.
할머니는 멍든 감은 홍시가 제대로 안된다며 괜히 나한테 시켰다며 후회하신다.
실망하는 할머니 말씀에 나는 고개를 뒤로 완전히 젖히고 감이 달려 있는 가지에 전지를 쑥 밀어 넣고 완전하게 꺾어 한 알씩 조심스럽게 땄다. 그러다보니 감은 한 접도 안되는데 해는 벌써 서산에 걸렸다. 감에서는 시작할 때와 달리 아주 곱고 예쁜 빛이 났다.
잎사귀 하나 달려있지 않는 가지에 매달린 감은 맑고 푸른 석양빛을 배경으로 마치 어느 산사의 연등처럼 붉게 빛났다. 나는 지금도 그날 눈부시게 빛나던 그 주홍빛 감 연등을 잊을 수가 없다.
어두워지기 전에 끝마치기를 서두르는 내게 할머니는 “이제 그만하자”시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감을 한 곳으로 모은다. 나는 “아직 대여섯 개는 남았는데요?”했더니 할머니는 “남은 것은 까치밥이다. 까치도 먹고 살아야지”하며 웃으신다.
까치밥!
그날 감나무 꼭대기를 가리키며 할머니께서 일러준 까치밥 세 음절은 내 가슴에 다가와 맥놀이가 되어 북소리처럼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까치밥의 의미가 베풀고 배려하는 우리 조상들이 지켜온 숭고하고 아름다운 삶의 지혜임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누군가의 까치밥이 되지 않겠다고 얼마나 아등바등 매달리는가. 해마다 가을이 오고 감나무에 매달린 빨간 홍시를 볼 때마다 까치밥의 의미를 일러주신 할머니의 인자하신 모습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