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2013-01-11     해남우리신문
가끔은 보고 싶은 이들이 있다.
잊고 있다가도 포근한 고향처럼 아련히 다가오는 이들이 있다. 굳이 그들이 보고 싶은 이유를 꼬집어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마냥 보고 싶다. 그건 아마도 내가 가진 언어로는 마저 표현하기 힘든 가슴에 품은 ‘어떤 것 들’ 때문이리라.
오늘처럼 보고 싶은 파문을 일으키는 몇 안 되는 나의 임들은 그래서 귀하다. 나의 임들은 때 묻지 않은 시골 처녀 같고  어릴 적 깨 벗고 물장구치던 친구 같고 아주 편한 평상복 같기도 하다.
퇴근하는 길에 해촌(海村)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나의 임이다.
“어야, 海村이 무슨 뜻이당가?”
“해남 촌놈이란 말이여라우”
지금은 목포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그는 한 길만을 보고 달려가고 있는 海村이다. 海村이라는 그의 닉네임(nickname)처럼 신용시대에도 현금을 지갑에 빵빵하게 담고 다녀야 하는 촌놈이다. 한번 일에 빠지면 반쯤은 미쳐서 집구석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그 일에만 집중하는 녀석이다. 어느 날 그와 함께 여행길을 갔다가 그가 연구하는 과제(Project)와 관련된 매똥(묘지)만 보이면 사진기를 들고 산비탈로, 들판으로 뛰어다니는 바람에 종일 매똥만 보고 왔었다.  한번은 그가 사는 아파트를 찾아 갔다가 호수(the number of a house)를 몰라 전화를 걸었다. “형님, 그 새다구(사이)로 들어오시오” “새다구가 뭣이당가? 이 사람아!”
그는 오래 전에 잊혀졌을 법한 옛 언어들을 담고 살아가는 해촌이다.
집념으로 똘똘 뭉쳐있고 전혀 가식이 없는 모습 그대로가 좋아 그는 나의 임이 되고 말았다.
그와 별로 의미 없는 대화를 몇 분 동안이나 나누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이와 나눈 대화치고는 유치한 대화다. 하지만 유치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이는 격(格)을 넘어선 관계일 때라야 가능하다. 사랑은 진할수록 유치해 진다던가?
집으로 돌아와 海村을 그린다.
촌놈끼리 무지 촌스런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데 가슴엔 그리움이 흐르고 그의 모습이 환상처럼 다가온다.
그는 나의 임인 것이다.
임은 작은 인연(因緣)들로 인해 만들어진다.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인해 임이 되고 아름다워진다. 금아(琴兒) 피천득임은 인연에 대해 베짜기와 같은 것, 그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작지만 반짝이는 사건을 씨줄로 하고 곱고 연한 마음을 날줄로 삼아 인생이라는 천을 짜는 베짜기가 인연이란다. 또한 인연이란 그물 같은 것이어서 그물의 한 교차점을 당기면 모든 교차점이 따라서 출렁이듯이 우리는 서로 연분 지어진 관계라고.
인생은 인연들을 만들며 살아가는 여행길이다. 여행길 가다 힘들 때 격 없는 대화를 나누며 함께 출렁일 수 있는 임이 있다면 숲이 되고 쉼터가 되지 않을까?
임은 늘 가슴 깊숙한 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가 어느 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임으로 드러난다. 임은 작은 인연들이 겹쳐 마치 새싹이 솟아오르듯 가슴에서 솟아오르고 삶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임은 서로 손가락을 걸어 약속하지 않아도 어느 날 임이 된다. 한번 임은 영원한 임이다. 임은 소식이 없어도 임이고 만나지 않아도 임이다.
짧은 세상 사는 동안 함석헌임의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라는 시처럼 임으로 남겨질 인연을 만들고 싶다.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
머문 듯 가는 세월 속에서 그런 임들을 가슴에 담아 살고 싶다.
인생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새해 첫 날, 첫 전화를 해촌(海村)에게서 받았다.
“형님 뭣하요?”
나의 임은 나이를 잃은 영원한 소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