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를 놓는 마음

2013-02-01     해남우리신문
짙은 겨울이다. 겨울의 창가에서 보이는 색깔은 늘 회색이다.
하늘에 잔뜩 쌓아놓은 눈덩이를 쏟아내지 못해 찌푸린 색깔이 회색이다. 지난 시절 입었던 녹색 옷과 홍색 옷을 벗어버린 나목(裸木)의 색깔이 회색이다.
겨울은 회색을 만들어 낸다. 초록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던 바위가 알몸을 드러내면 산은 회색으로 변해 버린다. 겨울바위는 노인네들의 검버섯처럼 군데군데 이끼가 낀 회색이다.  회색나무엔 예전엔 전혀 보이지 않았던 벌레집들이 더덕더덕 붙어있고 새들이 떠나버린 둥지가 덩그마니 남아있고 말라붙어버린 열매가 서너 개 남아있다.
아침재를 넘어온 유난히도 차가운 겨울바람의 위세에 움츠리고만 있다가 오랜만에 금강산 산책로를 찾았다.
하늘을 향해 쭈욱 뻗은 잡목들의 잔가지들이 거미줄처럼 엮어져 있고 잔가지들 사이로 하늘이 희끗희끗 보인다. 나무를 타고 오르던 덩굴식물들이 겨울 냉기에 힘을 잃고 너부러져 있다. 잡목의 잔가지를 꺾어보았다. 성급한 마음에 나뭇가지에 물이 올라오고 있는지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아직 나무는 말라있다.  하지만 봄은 멀지 않은 것 같다. 냇가 옆 버들개비가 하얀 솜털을 보듬었다. 봄이 오는 그림이다.
산책로는 언제 보아도 정겹다. 주변의 바위, 물, 나무, 냇가의 물소리와 산책로를 오가는 사람들의 정겨움이 윤선도의 오우가를 연상케 한다.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걷고 있는데 기타(Guitar) 가방을 멘 어르신이 올라가고 있었다. 외모로 보아 연세가 상당히 드셨고 기타를 치시는 분처럼 보이지는 않은데 아무튼 기타 가방을 메고 우리보다 앞서 올라간다. 산책로에 있는 4곳의 징검다리 중 3번째 징검다리가 놓여있는 곳에 이르러 앞서 가던 그 분과 만났다.  그 분은 가방을 내려놓고 아직은 손이 시릴 냇가에서 큼지막한 돌을 고르고 들어올리기가 힘들었던지 돌을 굴려 징검다리를 놓는다. 위쪽엔 든든한 징검다리가 있는데 또 한 줄의 징검다리를 만드신다. 아마 사람들이 오갈 때 서로 기다리거나 부딪히지 않도록 배려를 하고 계신 것 같았다.
“좋은 일 하시네요.”
“이 돌이 흔들려서 위험할 것 같아서요.”
목적지인 돌탑이 있는 쉼터까지 갔다가 되돌아올 때까지 그 분은 거기에 계셨다. 징검다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돌을 괴는 마지막 작업을 하고 계셨다.
“어디 사세요?”
“주공 1차 아파트”
그 분이 완성해 놓은 징검다리를 밟고 돌아왔다. 돌 두 개를 나란히 놓아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해 놓아 건너기가 편했다. 아마 다른 곳에 놓여진 징검다리도 저렇게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겠지.
산책로엔 사람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이 이야기로 남아 있다. 그 흔적들이 징검다리를 놓는 마음처럼 따스하고 마음이 포근한 흔적들이었으면 좋겠다.
징검다리를 건너오며 ‘징검다리를 놓는 마음’을 생각했다. 무심코 건너던 냇가에 돌 몇 개 놓여 이쪽과 저쪽을 이었다. 아직 짙은 겨울인데 시린 손 녹이며 놓은 징검다리에 봄 같은 마음 따스히 담겼다.
사람의 마음은 냇가의 이쪽과 저쪽 같다. 돌 몇 개만 놓으면 건너갈 길을 나는 이쪽에서 너는 저쪽에서 바라만 본다.
마음의 돌 몇 개가 이어지지 않아 몇 발자국 가다가 돌아서고 만다.
돌 몇 개를 놓으면 맞닿을 거리 돌, 몇 개 놓을 맘 없어 너무 멀기만 하다.」
징검다리를 놓는 마음과는 대조적으로  산책로 주변엔 산을 오가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너저분하다. 그 분이 징검다리를 놓던 마음으로 우리도 마음의 징검다리를 놓아보면 어떨까?
오랜만에 오른 산책로에서 시린 손을 비비며 징검다리를 놓으시던 그 분의 따스한 마음에 봄처럼 훈훈한 하루였다.
징검다리를 돌아 흐르는 물에서 봄 소리가 들리듯 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산도 회색을 벗고 봄의 전령사인 진달래꽃이 필 때쯤이면 이 징검다리에도 아이들의 소리가 머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