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더 돋보여 세한도라 했나
2013-02-01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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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는 겨울철 온 몸에 흰 눈을 덮어 쓰고 있을 때 그 청정함이 더욱 돋보이는 지조가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주변 활엽수의 무성하던 잎은 모두 지고 낙목한천에 홀로 우뚝 선 모습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난다.
더구나 침엽수 사이사이 하얗게 박힌 얼음 눈과 진한 푸른빛의 조화에서는 강한 생명력이 배어난다.
그뿐인가, 눈 덮인 소나무 숲속을 걸으며 느끼는, 소름이 돋을 만큼의 태고적의 정적에서 오는 두려움은 또 어떤가?
나는 이런 설경의 유혹을 못 이겨 지난번 첫 눈 오던 날에도 산행 중 가벼운 골절상을 입었다.
소나무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잘 맞아 사랑을 많이 받는 나무다.
특히 내 고향 해남군 청사 앞마당에는 우리 고을을 상징하는 아름드리 소나무 한 그루가 아름다운 사연을 안고 지키고 있다.
450여 년 전 왜적이 60여 척의 병선을 앞세우고 쳐들어왔던 ‘을묘왜변’ 때 인근 강진, 장흥, 진도 등은 짓밟혔다.
그러나 해남읍성만은 현감 변협의 뛰어난 지략과 온 군민의 결사항쟁으로 성을 잘 지켰다.
사변 후 수성의 공을 기리는 소나무 한 그루를 동헌 뜰에 심고 ‘수성송’이라 이름 지으니 오늘에 이른다.
소나무는 수성뿐 아니라 우리가 태어날 때는 수호신이 되어 금줄에 끼워 잡귀를 막았으며, 사는 날 동안에는 십장생의 하나가 되어 부귀와 장수의 상징으로 숭배됐다.
소나무는 덕이 있고 인격이 있다.
조선시대 세조임금은 벼슬까지 하사했으니 충북 속리산의 천연기념물 제103호 정2품 노송이다. 높이 30m, 둘레 6m, 수령 600세다. 또 세종 때의 선비 강희안은 그의 저서 (양화소록)에서 소나무를 노송과 만년송으로 구분했다.
노송 가운데서도 잎이 세 개는 고자송(枯子松), 다섯 개는 산자송(山子松)으로 구분했다. 산자송은 송지의 맛이 떫고 땅속에서 천년이 지나면 복령이 되고 또 천년이 지나면 호박이 된다.
특히 큰 소나무는 천년이 지나면 그 정기가 청우(털이 검은 소)가 되고 복구(엎드려 있는 거북)가 된다고 했다.
만년송은 층진 가지에 푸른 잎이 마치 타래실이 아래로 드리운 듯하다. 또 나무줄기가 뒤틀려 꾸불꾸불한 게 꼭 붉은 뱀이 숲 위로 올라가듯 하며 청렬한 향기가 풍기는 것이라야 아름답다. 같은 만년송이라 해도 잎이 희고 가시가 있으면 하품이라 했다.
강희안은 꽃과 나무를 ‘화목 9등 품제’로 구분하여 소나무는 동백, 종려, 치자, 사계와 함께 3등품이라 불렀다.
소나무는 노송일수록 멋이 있고 값도 쳐준다.
수령이 몇 십 년에 불과한 애송과 수백 년 된 노송의 가격차에서 알 수 있다.
같은 소나무라도 경북 춘양 지방에서 나는 ‘춘향목’을 으뜸으로 친다.
조선시대 선비의 최고 호사 취미 가운데 하나가 사랑방에 춘양목 서랍장 하나쯤 들여놓는 일이다.
송 내 나는 춘향목 책상 앞에 앉아 사서삼경을 읽는 선비의 가슴에 어찌 청량한 솔바람 한 점 일지 않으랴.
소나무는 또 수묵화 제1의 제재(題材)가 되었으니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혼란은 세한도가 추구했던 선비 정신의 실종에 있다면 억측일까?
엄동설한의 모진 추위에 홀로 맞서는 푸른 소나무여!
네 자태가 고귀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