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있고 감성이 있는 곳으로의 여행
2010-04-24 해남우리신문
1986부터 88년까지 고고학계의 이목은 해남 송지면 군곡리로 집중됐다. 목포대 박물관 팀의 발굴을 통해 거대한 해상세력이 해남에 존재했음이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것도 중국 한나라의 대방과 낙랑, 일본과 가야와의 교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형성한 해상왕국이었다.
통일신라시대 장보고가 완도 청해진에 해상왕국을 건설했던 때보다 훨씬 이전 시대인 3~5세기에 해남에 해상왕국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고고학계는 흥분했다.
삼국시대 이전 마한의 한 세력이었던 이 해상세력은 국제무역을 통해 부를 형성했고, 형성된 부로 송지면 군곡리에 해상도시를 건설했다. 발굴을 통해 이곳에서는 중국과 가야, 일본계의 유물들이 대거 출토됐다.
2009년 3월 고고학계의 이목이 다시 해남에 쏠렸다.
5~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옥천면 성산 만의총 1호분에서 신라와 가야·일본·백제계 유물들이 대거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 고분에서는 보기 드물게 신라와 가야, 백제계의 유물이 그것도 외진 해남에서 한꺼번에 발굴되었다는 사실은 고고학계를 흥분시키고도 남운영았다.
특히 신라지역에서만 출토되는 서수형 토기가 이곳에서도 발견되었다.
고대사회 해남에는 송지 군곡리와 옥천 성산리 일대 외에도 곳곳에 거대한 해상세력이 대외 무역을 통해 부를 형성했다.
목포대 박물관은 송지 군곡리 패총 발굴 20주년을 맞아 해남, 해양교류의 시작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해남반도에서 발굴된 고대 유물을 한자리에 모은 특별전은 해남이 끝이 아닌 해양교류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전시물은 주로 청동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해당된 유물들이다.
목포대 박물관의 특별전을 통해 해남이 과거 해상왕국이었고 국제무역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또한 해남이 땅끝이 아니라 중국 및 일본과 무역을 행했던 해상 중심의 땅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목포대발물관은 일반 박물관과 달리 토요일과 일요일은 개방하지 않고 평일 5시까지만 문을 연다.
박영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