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도 굴뚝도 대문도 돌 … 돌담이 살아 돌아왔다
2010-04-24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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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면 강절마을에는 느림이 있다. 그리고 생태가 있다. 전 마을의 담이 모두 돌담이다. 차곡차곡 쌓았을 돌담,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질 않는다. 칼바람이 살을 에는 겨울, 골목길은 오히려 포근함을 준다. 옛것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느림이 주는 포근함이다. 마을 초입부터 에둘러 돌아가는 돌담길을 따라 걸으니 유독 눈에 띄는 집이 있다. 200미터가 될 듯한 돌담 안에 대문도, 집 기둥도, 굴뚝도 모두 돌담이다.
마을 주변에 흩어져 있는 돌들을 모아 너무도 어여쁘고 정교하게 만든 조형물들이다. 사각의 시멘트 안에서만 생활한 이들에게 길고도 긴 돌담과 돌의 조형물들은 다정다감하게 시선을 끌어들인다.
담도 굴뚝도 대문도 돌 … 돌담이 살아 돌아왔다
느림이 있고 사람 냄새 있어 넉넉한 집
돌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모양 재미있어
2008년 초 박득수(61)·강정옥(53) 부부는 도시생활을 접고 느림이 있고 녹록한 정이 있는 시골 행을 감행했다.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할 생활공간을 찾기 위해 부부는 흑석산을 올랐다. 흑석산에서 바라본 계곡면 마을들, 모두들 정겹기 그지없는 농촌풍경이었다. 그러나 유독 눈에 띄는 마을이 있었는데 그곳이 강절마을이었고, 강절마을 중에서도 꽤 터가 넓은 폐가가 눈에 들어왔다.
1000여 평의 대지와 그 안에 쓰러질 듯 서 있는 기와집을 겁 없이 사들이고, 그림 같은 돌담을 짓기로 했다. 폐가가 되다시피 한 한옥 외벽을 다시 리모델링하고 출입문 쪽에 돌기둥을 세워 나름의 창의성을 가미했다. 그토록 흉물스럽던 집이 운치 있고 독특한 구조물로 탄생됐다.
강절마을은 그야말로 돌 세상이었다. 주변에 널려있는 돌들을 활용해 부부는 돌 천국을 만들기 시작했다. 1000여 평에 이른 대지 주변을 돌담으로 쌓기 시작한지 2년, 하루 내내 돌을 쌓아도 몇 미터도 나아가질 못했다. 돌을 쌓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쌓는 듯 그렇게 부부는 느리게 돌과의 놀이를 계속했다. 물론 지금은 200여 미터에 이를 만큼 돌담이 쌓여졌고 이젠 100미터 정도만 남겨놓고 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그 사이 멋진 돌굴뚝도 완성했다. 높이 6미터짜리 돌굴뚝,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굴뚝은 아침저녁으로 연기를 뿜어낸다. 박목월 시인의 시 나그네에서 느껴지는 농촌의 정겨움이 묻어난다.
자신의 공간을 모두 돌로 만들고자 하는 이들 부부의 욕심은 갈수록 커져만 갔다. 대문 기둥도 돌기둥으로 만들었다. 딱딱한 돌의 느낌을 없애기 위해 대문 기둥을 원형으로 처리해 주변과 조화를 이루게 했다.
박씨 부부가 돌을 고집한 이유가 있다. 돌은 거짓이 없다는 것이다. 정성껏 쌓은 돌담은 수 천년이 흘러도 변함없이 그 자리 그대로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돌담을 쌓다보면 개성적인 모양의 돌들이 모여 너무도 다양한 문양을 만들어 낸다는 점도 돌에 매료된 이유 중 하나란다.
돌에 빠져본 사람만이 그 진미를 안다는 박씨, 그것도 사람의 발길에 차이는 길가의 돌들이 만들어낸 조화란 자연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멋이란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돌담 쌓기, 시작은 있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돌과의 유희에 빠져버린 박씨 부부는 중국의 만리장성도 부럽지 않다. 끝없이 도전하는 정신이 있는 한 만리장성도 쌓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박씨의 직업은 건축업이다. 그렇다고 천연덕스럽게 세월과 싸우는 돌담을 쌓는 그런 건축일은 아니다. 빠름이 있는 건축업이다. 그러나 느림이 있는 돌담이 주는 미학은 건축일 중에서도 가장 매력 있고 자연과 교감하는 느림의 미학이 묻어 있단다.
아직도 집이 완성되려면 2년이 더 걸려야 한다. 이왕 느림이 있는 집짓기를 시작한 터라 조급할 것은 없다.
박씨 부부가 돌담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강절마을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 2008년 참 살기 좋은 마을 전국 대상을 차지한 강절마을은 박씨 부부 집에서 착안을 얻어 마을의 주 특징을 돌담으로 선정한 것이다.
돌담 박사로까지 통하는 박씨는 마을 울력에도 참여해 돌담 기술을 전수했다. 또한 돌담을 쌓으려는 옆 마을에도 수시로 불려가 돌담 쌓기를 도왔다.
그의 돌집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완성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지금의 모습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잡기엔 충분하다.
햇빛 쪼가리가 반갑기만 한 날, 강절마을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느림과 자연이 생활 속에 성큼 들어와 있다.
박영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