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항일운동 추모비 건립제막을 마치고
2013-07-15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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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1592~1597년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일으켜 우리국토를 유린했다.
그러나 울돌목 전투에서 이순신장군과 해남·진도 수군들은 세계 해전사상 유례없는 대첩으로 조선을 구했다.
일본은 또 1890~1894년 전국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군 진압과정에서 해남의 동학농민혁명군 71명을 무참하게 살육했다.
1909년에는 우리나라 마지막 의병활동을 전개한 의병들을 대흥사 심적암에서 대량 참살시키고 요사체를 전소시켰다. 10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심적암은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또 1919년 기미 3·1 독립만세운동 때 해남읍과 우수영 장날에 궐기한 74명을 투옥시켰다.
1931~1934년 일어난 호남최대 독립운동단체인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에 연류된 해남인 21명을 투옥했다.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은 광주를 비롯한 전남 9개 군에서 558명이 체포되었는데 운동의 중심지는 북평 이진과 산이면 상공리였다.
해남 땅에서 일본에 맞선 이들 중 총 327명(10명은 신원미상)이 전사 또는 참살, 투옥됐다. 위와 같은 자료는 국가보훈처, 독립기념관,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과 각 언론사와 동학혁명 희생자 심의위원회, 일본총독부 판결문 등 모든 자료를 6년 동안 입수 정리한 것이다.
해남인들의 애국정신을 함양하고자 매년 추모제를 거행하고 있는 추모사업회는 7년 동안의 노력 끝에 국가보훈처, 전라남도, 해남군의 예산지원과 총 공사비 4400여만원 중 40%를 군민성금으로 지난 9일 해남광장에 추모비를 완공, 건립제막식을 거행했다.
7년 동안 추모사업회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특히 해남에 시집와 살고 있는 일본여성 20여명이 사죄문과 사죄의 인사를 마치고 참석자들에게 점심봉사를 해준데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
끝으로 독립운동을 하신 애국지사님들이 1950년 한국전쟁을 전후해 또다시 친일·독재정권의 비호를 받은 국가공권력에 의해 진도 갈매기섬 등지에서 학살당하고 그 가족들은 연좌제에 묶여 2중 3중의 피해를 입은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합동 위령비 건립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