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강좌 시리즈-미국의 국민화가 모지스 할머니
2013-07-19 해남우리신문
그랜드마 모지스(Grandma Moses:1860-1961)는 시골농장의 평범한 주부였다. 10남매를 출산 했으나 5남매를 읽고 그 시름을 달래기 위해 자수를 시작했다.
76세 된 해 손가락 관절염으로 더 이상 자수를 할 수 없게 되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남편이 죽자 딸이 사는 뉴욕으로 옮겨 가 버지니아 스타운톤의 농장 생활을 그리워하며 그곳의 모습들을 그려 나간다.
그 그림들을 뉴욕 변두리의 작은 마켓에 내다 싼 가격에 팔곤했다. 그러던 어느날 미술 수집가 루이스 칼더의 눈에 띄고 그 이듬해 미술 기획가 오토 칼리어가 뉴욕의 한 갤러리에 전시를 열게 되면서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101세에 사망하기 까지 30여년 동안 1000점이 넘는 작품을 남긴다.
1949년 해리 트르먼 대통령은 모지스 할머니에게 여성 프레스 클럽상을 수여했으며 넬슨 녹펠러 뉴욕 주 지사는 1960년 그녀의 100번째 생일날을 모지스 할머니날로 선포했다.
무엇이 그토록 미국인들이 그녀를 아니 그의 그림을 사랑하는 것일까.
할머니의 그림들은 소박하면서 밝고 따뜻하다. 그 시절 미국 농가의 생활상들이 정겹다. 아마도 단순 소박한 그 그림들 속에 담긴 삶을 사랑하는 그 마음에 함께 공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늘 어디서나 있었던 시골의 결혼식 장면, 사과 수확하기, 칠면조 잡기, 잠든 아이들의 모습, 강 건너 할머니의 집에 가는 길, 단풍나무 시럽 만들기, 그 것들을 싸안고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들, 지나가 버리면 잊혀지고 말 그 순간들을 화폭에 담아낸 그 사랑의 마음이리라, 할머니는 생전에 150회가 넘는 개인전을 가졌으며 100여회의 그룹전에 초대되었다.
한 할머니의 삶이 이렇게 크고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예술이라는 그 깊은 울림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내게도 모지스 할머니는 나의 로망이다. 몇년 전 서울 도봉 갤러리 전시회때 어느 할머니 관람객께서 내가 전시 서문에 쓴 모지스 할머니를 닮고 싶다는 글을 보고 아들이 미국에서 선물로 사다 주었다는 모지스 화집을 가져와 보여 주셨다. 그 많은 작품 수와 작품 하나하나의 따뜻함에 감동을 받았다. 또 예술을 사랑하는 그 사람들의 정신이 부러웠다.
내 나이는 아직 모지스 할머니가 그림을 시작하지도 않은 나이이다. 난 그래도 걸음마는 떼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직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이 내 앞에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오늘도 붓을 잡는다.
이 해남 매월리 바닷가 마을은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선택이며 은혜임을 감사 드린다. 나도 내 그림이 따뜻한 울림으로 남게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