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세상을 기대하며

2013-08-16     해남우리신문
나는 동물의 왕국이나 다큐, 스포츠 중계에 TV 채널을 고정시키는 편이다. 동물의 왕국에는 권모술수가 없다. 생명의 신비와 자연의 이치 그리고 생존을 위한 모습이 그대로 그려진다. 다큐멘터리는 실제로 있었던 어떤 사건을 극적인 허구성 없이 그 전개에 따라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다. 이들 장르의 공통점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데 있다.
이런 취향은 방송 보도 역시 편향성이 있다고 보는 내 편견 때문이고 보도의 뒷면을 들여다보는 몹쓸 버릇 때문이다.
모처럼 세상 돌아가는 형편이나 알 겸 TV를 켰다.  
뉴스 전문 채널을 고정하고 있자니 가슴에선 불끈 불끈 감정이 치밀어 오른다.  
요즘 꺼리들은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건, 전(前) 대통령 추징금 사건 및 재산 도피 의혹, CJ비리, 세금 확보 문제 등 볼쌍사나운 일들만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이슈가 되는 보도의 내용들은 어느 것 하나 명확하지 않고 오리무중이다. 여당과 야당은 서로를 몰아붙이며 말싸움을 하고 있다. 말싸움의 단계는 막말싸움, 다음은 장외투쟁이고. 말싸움 끝에는 꼭 ‘국민을 위하여’ ‘민생을 위하여’ 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그런데 그 수식어가 아무래도 미심쩍다.
과연 국민을 위하여 저런 정쟁을 하는 것일까? ‘국민을 위하여’라는 말은 ‘국민의 행복을 위하여’라는 말과 의미가 같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들의 행동들이 국민의 행복을 위한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행동들의 뒷면에 감춰진 전략에 관심을 갖게 한다.
정치(政治)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 이다.
이런 원론적 관점과 우리 정치 구도를 비교해 보면 우리 정치는 이분법적 논리 싸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억에 남는 정치사를 보면 극단적인 흑백논리나 좌우논리로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했고 지금 역시 진보냐 보수냐의 대결구도를 가지고 있다.
대의 정치에서 정치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대변하되 상호 이해와 조정을 통해 국민의 행복을 이끌어 내는 고도의 기술이다. 따라서 정치인이란 당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 한 가지 정치권의 문제 처리 방식을 보면 정치 기술의 부족함이 실망스럽다. 막말 파동, 인기 발언 등이 난무하고 어떤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정치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정쟁의 마지막엔  고소, 고발을 통해 검찰의 손으로 배턴을 넘기는 행태를 취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고소장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은 참으로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다.
국민은 늘 보고 있다. 생각하고 느끼고 있다. 어떤 판단이 국민을 위한 것이며 과연 누가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를…. 국민을 위함이 없는 정치는 대본에 따라 움직이는 드라마(drama)일 뿐이다.
해방 후 우리의 근대정치 역사도 60년을 넘었다. 인간으로 치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이순(耳順)의 나이를 넘은 셈이다. 그럼에도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정치 패턴에 실망감만 더할 뿐이다.
정치 문외한이 보아도 국민을 위해 처리해야할 시급한 민생 현안(懸案)들이 산적해 있다. 경제위기는 계속되고 있고 대내적으론 가계부채와 공공부채가 수북이 쌓여 있다. 성장률은 0%를 겨우 벗어났고 국민들은 살기가 어렵다고 아우성이며 우리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갈 곳은 없는데….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생각해 본다.
목민심서는 목민관으로서의 마음가짐과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저술로 수기치인지학(修己治人之學)을 배우는 데 힘써 수령의 본분이 무엇인가를 직시하고 치민(治民)하는 것이 곧 목민하는 점을 지적하였다. 당시의 목민관의 역할이 오늘날 정치인의 역할과 동일할진데 국민을 위한 정치를 부르짖는 이들의 목소리와 실제는 간격이 있는 것만 같다.  
민초(民草)들에게는 간절한 소원이 있다. ‘국민을 위하여’ ‘민생을 위하여’라는 그들의 주장이 부끄럽지 않는 소리가 되기를, 국민이 정치인들의 소리를 믿고 장래를 맡길만한 세상, 그리고 OECD국가 중에서 겨우 꼴찌를 면하고 있는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세상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눈을 돌려 풀뿌리 민주주의라 일컫는 지방자치 역시 예외는 아니다. 2014년 지방선거부터 시군구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가 폐지될 예정이라고 한다. 책임정치의 구현이라는 취지로 도입했던 정당공천제로 인한 폐해들 때문이란다.
하지만 어떤 경우이든지간에 병폐의 주역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폐해가 있다고 제도를 고치겠다고 하는 이들도 사람이다. 제도를 고침은 약간의 유익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을 고치는 것이 더 낫지 않을런지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요즈음 가장 많이 쓰이는 용어가 힐링인 것 같다.
정치인들의 이야기가 희망으로, 힐링으로 다가와 내일은 국민의 행복지수가 더 높아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