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의 맛, 막걸리 기행 ③ 산이막걸리

2010-05-01     해남우리신문
산이주조장 박양권(72) 사장은 멀리 서울까지 막걸리 박사로 통하고 있다. 외길 52년의 그의 막걸리 인생은 누구든 한우물만 파면 한 방면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전국적으로 해남막걸리만 한 막걸리가 없다고 자부한다.
그가 막걸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사촌 형님 때문이란다. 그가 21살 되던 해였다. 당시 작천주조장을 운영하던 사촌 형님은 영암주조장을 인수해놓은 상태에서 민선 면장에 당선 돼 주조장 사업을 접어야 했다. 당시 영암 지역에는 3개의 주조장이 경쟁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경영을 맡은 박사장은 10여년 동안 탁월한 장인 정신을 발휘해 영암막걸리를 반석에 올려놓았다.
그에 따른 사촌형님의 포상으로 32살 되던 해에 산이주조장을 차린 그는 올해로 40년째 산이 생막걸리를 빚고 있다.
박사장은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35살이다’하고 되뇐다. 초창기에는 막걸리 인구가 많아 종업원을 12명까지 쓰기도 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혼자서 해야 하기 때문에 늙었다는 생각을 하면 일을 할 수가 없단다. 또한 사업상으로 언짢은 일이 발생해도 ‘나는 35살이다’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쉽게 풀어진단다.
박사장이 권하는 원주의 맛을 보았다. 14도라는데 독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를 않았다. 더구나 30여일이 지난 술인데도 혀끝에 감칠맛이 여운으로 남았다. 원주란 발효시킨 후 막 걸러낸 상태의 술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 막걸리의 알코올 도수를 맞추기 위해 물을 희석시키기 전의 술을 말한다. 원주의 도수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술의 양이 많아진다는 것으로 발효실에서 풍겨오는 향기만으로도 풍년의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다고 한다.
옛 전통방식을 고집하며 술을 빚고 있는 박사장은 막걸리에는 자신의 혼이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지금은 예전처럼 재료에 대한 규제가 까다롭지 않아 70년대처럼 밀가루로만 술을 빚던 시대는 아니다. 박사장은 100% 쌀막걸리는 오히려 머리가 아프다며, 밀가루가 적당히 함유돼야 한다며 청주(일명 정종)가 머리가 아픈 이유는 쌀로만 빚기 때문이란다.
박사장은 이쁜 첩은 3년이고, 본부인은 평생이라며 자신의 술을 찾는 사람을 위해 조강지처 같은 변치 않는 손맛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한다.
앙금이 가라앉아 있는 술들은 오래 둘수록 발효가 진행돼 그 맛이 살아난다며 웃국만 걸러놓게 되면 효모들의 활동이 억제돼 덜 익은 김치처럼 어정쩡한 맛을 낸다고 한다.
막걸리는 뭐니뭐니 해도 홍어 안주가 제격이라고 말하는 박사장은 배고플 땐 어떤 안주와도 궁합이 맞는단다. 요즘 같은 철에는 미나리무침이나 잘 익은 김장김치도 좋은 안주감이라고 말하는 그는 특히 미역귀는 입안의 잔상을 제거해주기 때문에 막걸리 감별사들도 즐겨먹는 안주라고 밝힌다. 박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