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고개이름

2010-05-08     해남우리신문
호랑이 덫 형국이라 쇠노재
소가 누워있는 모양 우슬재
병아리도 울고 넘어 병아리재

오시미재, 쇠노재, 닭골재, 아침재 등은 해남에서 잘 알려진 고개입니다.
사람들의 발길로 닳아진 옛 고개는 많은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습니다. 수천 년의 세월동안 숱한 사람들이 걸었을 고개. 해남에 최초 입향한 조상에서부터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지금은 내가 넘는 고개, 교통의 발달로 이젠 옛 모습은 많이 사라져 버렸지만 그래도 옛 이름만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에게 매우 낯익은 고개가 오시미재입니다. 삼산면에서 북일면로 넘어가는 가파른 고개이지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이 고개에는 산적이 성행했다고 합니다. 해가 질 무렵 지나가는 행인의 짐을 빼앗고 감쪽같이 사라지는 산적 때문에 오십여 명이 떼를 지어 넘어야 했기에 유래된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 고개를 오소재라고도 부릅니다. 고개정상, 좌측 주작산이 시작되는 곳에 바위가 있습니다. 이 바위가 까마귀 집을 닮았다고 해 까마귀 오(烏)자에 집 소(所)자를 써 부르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곳 약수터에서 대흥사로 넘어가는 등산로를 오심재라 합니다. 부처를 만나는 길이라 깨달을 오(悟)자에 마음심(心)자를 써 그렇게 부른다지요. 이와 비슷한 고개 이름이 또 있습니다. 현산면 덕흥리에서 대흥사로 넘어오는 고개인 오도재입니다. 대흥사를 창건한 아도화상이 처음에는 절을 덕흥리에 지으려 했답니다. 백두대간의 혈맥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고개 정상에 올라 다시 한 번 지형을 살펴보니 지금의 대흥사 터가 눈에 들어옵니다. 천년만년 부흥할 사찰 터였지요. 아도화상이 아차 내가 도를 그르칠 뻔 했구나 해서 그르칠 오(誤)자에 길도(道)자를 써 이 고개를 오도재라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닭골재는 현산 월송에서 북평면 남창으로 이어진 고개입니다. 닭과 관계있을 법한 이름인데 실은 이 고개를 닻줄재라 불렀다고 합니다. 월송마을 형국이 배 모양이고 고개 모양은 배를 선창가에 매단 기다랗고 구불구불한 닻줄을 닮아 닻줄재라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닭골재가 됐다는 것이지요.
이곳 닭골재 말고 진짜 닭골재가 존재합니다. 월송에서 북평 이진마을로 통했던 작은 고개이름입니다. 지금은 사람의 왕래가 뜸해졌지만 예전에는 이진과 영전마을 사람들이 월송장을 보기위해 다녔던 고개였답니다. 아마도 비슷한 이름의 두 고개가 존재하다보니 어느 순간 닭골재라는 이름으로 통일돼 부르게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쇠노재는 북일에서 북평으로 이어진 고개를 말합니다. 쇠노재 형국이 호랑이를 잡기위해 덫을 놓은 형국과 비슷해 쇠 금(金)자와 덫노자를 써 금노재 또는 쇠노재라 일컫게 됐다고 합니다.
원래 쇠노재는 두륜산 봉우리 중 하나인 투구봉 아래를 지나 북일면 삼성마을로 연결되는 곳에 위치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제시대 때 자원 수송을 위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시원한 신작로 고개를 만들었다고 하지요.
해남의 고개 중 병치재도 있습니다. 옥천면 성산마을에서 강진으로 넘어가는 고개입니다. 정유재란 때 옥천 성산 뜰에서는 의병전투가 일어납니다. 의병들과 중무장한 일본군과의 전투는 숱한 사상자를 내고 끝이 나는데 병사들의 전투가 일어난 곳이라고 해 붙은 이름입니다. 또한 임란과 정유재란 시기에 군사연습을 했던 옥천 성산마을 뒷산을 병치산이라 합니다.
병아리재도 있습니다. 화원 개초저수지에서 화원면소재를 연결하는 고개입니다. 지금은 완만한 고개가 돼있지만 30여 년 전만 해도 꽤 가파른 고개였다고 합니다. 고개가 어찌나 가파랐던지 병아리가 찔끔찔끔 울고 넘었다고 해 붙은 이름입니다. 정말 웃깁니다. 험한 고개가 아니었을지라도 그 작은 병아리 몸으로는 울고불고 넘었을 것인데 말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낯익은 고개가 우슬재입니다. 옥천에서 해남읍으로 넘어오는 고개인데 소가 누워있는 형국이라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아침재는 마산면을 넘어가는 고개이름입니다. 조선시대 마산면에는 해남을 유래좌지우지하는 토호세력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해남에 부임해온 현감들은 토호세력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매일아침 이 고개를 넘어 아침문안인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현감들이 아침마다 넘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지요.
해남사람이면 누구나 매일같이 드나드는 고개. 이름 유래를 알고 넘으면 그 맛이 새롭지요. 조상 누군가에 의해 지어졌고 오랜 세월동안 불린 고개이름들은 정말 정겹기 그지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