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희(북멘토)

지난 8월18~19일 양일간 열린 남도시민인문페스티벌에서 해남군민들이 직접 강단에 오르는 TED 강연이 있었다. 제목은 ‘내가 다니고 싶은 학교는’.
“저는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은데, 학교에서는 경쟁만을 가르치잖아요. 학교에서 경쟁이 아니라 협동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좋겠어요. 내가 공부하고 싶은 학교는 함께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학교입니다.”(김지희 학생). “저는 우리 아이들이 뭔가 하고 싶은 것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요.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하다보면 기초학습능력도 자연스럽게 습득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학부모 최성호). “제가 다니고 싶은 학교는 학생에게 많은 것을 해주고 싶은 학교가 아니다. 학생에게 귀 기울이는 학교, 학생이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실현하려고 노력해주는 학교, 그것이 제가 다니고 싶은 학교이고 제가 만들고 싶은 학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귀’다”.(윤준서 화산중학교 교사).


『학교 없는 사회』를 쓴 ‘이반 일리히’와『학교는 죽었다』의 저자 ‘에버레트 라이머’는 학교라는 제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학교교육은 필연적으로 탈락자를 만들어 내기 위한 제도이며, 나아가 성공하는 사람보다는 탈락자를 더 많이 만들어 내도록 돼 있는 제도다. 나는 학교가 실제로 일종의 추첨제처럼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뽑히지 못한 사람은 지불한 돈을 날릴 뿐 아니라 열등하다는 오명까지 평생 떠안아야 하는 그런 제도 말이다. 그러나 무릇 모든 게임이 그러하듯이 게임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학교라는 게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스타 오디션 같은 서바이벌 게임은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순진한 반면 학교는 ‘기회의 평등’이라는 신화를 확산하면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더 음험하고 교묘하다. 학교는 우리가 의심 없이 참여하기 때문에 지속되는 견고한 게임이다.


또 학교에서의 경쟁이란 마치, 느린 사람일수록 더욱 무거운 짐을 지고 느리게 달리고, 빠른 사람일수록 가벼운 짐을 골라잡아서 더욱 빨리 달려 점차로 두 사람의 차이가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는 묘한 장애물 경주와도 흡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착지점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정해져 있으며 거기에 제일 먼저 도착한 자에게 상이 수여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일리히의 답변은 ‘공생’이며, 라이트의 답변은 ‘협동의 원리’이다.


우리는 가끔 착각을 한다. 교권은 가르칠 권리인가? 아니다. 배울 권리는 있어도 가르칠 권리란 없다. 교사는 학생들의 ‘배울 권리’를 실현해 주는 것을 고유의 책무로 가진 존재일 뿐이다. 잘못된 구조를 지탱하고 지속시키는 데 나도 일말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질문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구조가 바뀔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을 해야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다니고 싶은 학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미 인문페스티벌 TED강연에 답은 나와 있다. 우리는 이제 행동에 옮기면 된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거대한 이론을 갖고 깃발을 꽂고 하는 것이 아니다. 조그맣고 사소한 것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우리를 뭉치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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