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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재생 운동3면이 바다인 해남은 해양을 통해 발전했다. 해남은 마한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백포만을 통해 국제해양무역을 통해 발전했고 또 조선시대에는 바다를 통해 왜구의 잦은 침략을 받았다. 목포대는 라는 심포지엄을 통해 해남의 해양사를 개괄했는데 마지막 주제로 ‘어촌뉴딜 300사업’을 포함시켰다.해남해양사 연구에서 어촌뉴딜 300사업은 생소한 분야였다. 왜냐하면 관련 논문도 적고 사료와 연구 논문, 책 등을 통해 해양사 관련 정보를 얻고 공부를 해왔던지라,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도 막막한 연구주제
목포대 사학과 해남의 해양사를 탐구하다
김상우(목포대 사학과)
2022.03.1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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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해남에 전승돼 오는 설화 중에서 해양 및 역사와 관련된 ‘해양 역사 설화’ 몇 가지를 소개한다. 물론 설화는 엄밀히 말해 역사는 아니지만 설화 속에 내포된 역사적 의미를 유추해 내는 일은 의외로 재미와 흥미를 느끼게 한다. 미황사 창건설화 해로 통한 불교 전래 “돌로 만들어진 배가 사자포구에 도착했다. 그 안에는 불상과 경전이 가득했다. 의조스님이 꿈에 황금 옷을 입은 우전국의 왕이 등장해 검은 소를 따라가 그 검은 소가 멈춘 자리에 절을 세우라는 현몽을 받고 미황사를 세웠다.” 미황사 창건 설화다. 먼저 ‘돌로 만들어
목포대 사학과 해남의 해양사를 탐구하다
오원빈/목포대 사학과 3학년
2022.02.1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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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에 시작된 왜구의 침략과 삼별초 항쟁으로 신흥 조선은 섬과 바다의 중요성을 외면했고 또 이를 버리는 공도정책을 취했다. 섬과 바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짙었던 조선시대, 그러나 해남 윤씨가는 섬과 바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이를 적극 개척하는 실용적인 경제관을 가지고 있었다. 바다 개척했던 해남윤씨해남윤씨가의 해양에 대한 인식은 간척사업에서 알 수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윤선도와 윤이후, 윤두서이다.진도군 굴포리는 윤선도의 간척 활동과 관련한 설화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고, 주민들이 윤선도의 은혜를 기리고자 세운 사당도 있
목포대 사학과 해남의 해양사를 탐구하다
이혜주(목포대 사학과 3학년)
2022.01.2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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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은 서해에서 남해로 이어지는 꼭짓점에 해당하고, 해남반도, 산이반도, 화원반도 등 3개의 반도로 이뤄져 있다. 이러한 해양지리적 위치로 인해 해남은 왜구의 침입이 잦았고, 제주도로 통하는 뱃길 역할을 했다. 또 해양지리적 위치 때문에 해남에는 전라우수영, 어란진, 이진진, 달량진 등 다수의 수군진이 설치되게 된다. 전라우수영의 성립 전라우수영의 위치는 오늘날 문내면 서상리이다. 원래 전라수영은 옥구현(현 군산시)에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옥구는 해로에서 떨어져 있어 1408년 영산강변의 대굴포(현 함평군 학교면 곡창리 대곡마을)
목포대 사학과 해남의 해양사를 탐구하다
김효주(목포대 사학과 3학년)
2022.01.1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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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다시 찾아온 위기명량해전. 이순신의 결사적인 리더십과 명량의 좁은 해협 및 빠른 물살이 승리의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명량해전의 승리 요인 중 우수영이 가지고 있는 장점 역시 중요하게 작용했다. 명량해전이 벌어졌을 당시 우수영의 모습과 군사시설 등을 중심으로 서술하려 한다. 1592년 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된 임진왜란은 1593년 강화교섭이 진행되면서 소강상태에 접어든다. 그러나 1597년 일본이 강화교섭을 깨고 재침략을 하게 되는데 그게 정유재란이다. 일본의 계략에 의해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되고 권율
목포대 사학과 해남의 해양사를 탐구하다
김정호/목포대 사학과 3학년
2022.01.1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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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량진 왜변의 발발1555년 5월11일, 70여 척의 대규모 왜구 선단의 달량진 상륙으로 달량진 왜변은 시작됐다. 을묘년에 일어나 을묘왜변이라고도 한다. 그날 왜구는 빠르게 달량진에 상륙해 병마절도사 원적과 장흥 부사 한온을 죽이고 영암군수 이덕견을 포로로 생포했다. 당시 현장 전투에서 수장이 죽은 것은 지휘체계에 대혼란을 일으켰다.달량진성을 유린한 왜구는 해남성으로 향했지만 해남 현감 변협과 남도포만호 송중기는 적은 군사로 해남성을 지켜냈다. 이후 왜구는 강진, 장흥을 차례대로 함락시켰고, 5월24일 영암 향교에 자리를 잡고 잡탕
목포대 사학과 해남의 해양사를 탐구하다
이고은(목포대 사학과 3학년)
2021.12.2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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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몽연합군 황산 삼지원에 주둔1597년 서해로 진출하려던 일본수군을 막아낸 명량해전, 1270년 삼별초와 여몽연합군의 치열한 해전도 명량에서 일어났다. 고려정부가 몽골에 항복해 개경으로의 환도(還都)를 천명하자 이에 반발한 삼별초는 봉기를 일으키고 남쪽의 섬을 경략하며 진도에 입거했다. 또 서남해안 섬과 바다를 장악하며 고려정부의 조운로를 막았고 지방관들은 삼별초에 조공까지 바치는 등 고려정부의 제정과 정통성을 위협했다. 여기에 삼별초는 일본과 연대를 시도하며 경남에 있던 몽골의 둔전지까지 공격하는 등 몽골의 일본정벌 정책도 위협했
목포대 사학과 해남의 해양사를 탐구하다
이재용/목포대 사학과 4학년
2021.12.2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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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장보고 세력 운영화원면 사동리 인근에선 대략 100여 기의 ‘초기청자’ 가마터가 발견됐다. 이곳 가마터의 발생 시기에 대해 9세기 전반 발생설부터 12세기 초 발생설까지 제기됐고, 조성 세력에 대해서는 장보고, 견훤, 지방호족, 고려 왕실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필자는 9세기 전반 발생설과 장보고 운영설이 타당하다고 보아 이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화원 ‘초기청자’의 발생 시기를 설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청자의 외형적인 모습이다. 화원 가마터에서 받침이 굵고 둥근 해무리굽 양식의 청자가 다수 출토됐는데, 비슷한 시기 중국의
목포대 사학과 해남의 해양사를 탐구하다
강승재/목포대 사학과 3학년
2021.12.0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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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을 중심으로 발달했던 해남의 역사가 목포대 사학과 학생들의 손으로 총정리됐다. 사학과 학생들은 10개월에 걸쳐 해남을 답사했고 그 결과물을 ‘한국의 하이난, 해남의 해양사를 탐구하다’라는 자료집으로 발간했다. 자료집에는 고대 마한시대부터 현재 이뤄지고 있는 어촌뉴딜 300사업까지 총 9개의 단락으로 정리했다. 목포대 학생들이 연구한 해남의 해양사를 9개의 단락으로 정리해 발표한다. - 편집자 주- 해남의 해양문화의 원동력은 고대부터 형성됐던 것으로 나타난다. 고대 해남의 해양문화의 중심지는 백포만 일대로 비정되며, 백포만 일대의
목포대 사학과 해남의 해양사를 탐구하다
선승규/목포대 사학과 3학년
2021.11.29 1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