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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는 걸 좋아합니다. 발레나 뮤지컬, 오케스트라 등의 공연은 주머니가 가벼운 내게는 부담스럽습니다. 대신 장애인복지 카드로 저렴하게 영화를 즐기고 있습니다. 30여 년 전에 장이머우 감독, 공리주연의 중국영화 ‘홍등(紅燈)’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러 명의 부인을 거느린 남자가 하룻밤을 함께 할 여자의 처소에 홍등을 매달게 합니다. 그것이 그 집안의 오랜 전통입니다. 부인들은 서로 시기하고, 모략하며 남편을 자신의 방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애씁니다. 아들을 생산해야 신분을 보장(?)받을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입
해남논단
오성근/ 작가 성평등과 자녀교육 강사
2025.11.2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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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강진만의 저두리 도로 방음벽에 열명 넘는 손길들이 모였다. 올 상반기 해남탐조새봄에서 청한 ‘새줍는 여인들’ 프로젝트를 계기로 체계적인 교육과 모니터링을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다시 모인 또 다른 버전의 두 번째 품앗이 조류 충돌 저감 캠페인이었다. 광주 성난비건팀과 강진생태연구회가 중심이 되어 해남, 장흥, 목포에서 와준 도움의 손길들. 강진관광문화재단과 강진군 관계자분의 직간접 도움도 있었다. 어찌나 부럽던지, 해남에서도 곧 천수천안의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기를! 그런데 저감조치 스티커 부착 시공은 5도 이하로 내려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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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선/해남탐조모임새봄 활동가, 땅끝아해 대표
2025.11.18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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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에 접어든 세계 정세는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형세다. 민주주의의 든든한 맏형 역할을 하며 세계 질서를 주도해 온 미국이 트럼프 집권 이후 천문학적인 국채를 이유로 자국 이익만을 앞세우면서, 세계 각국과 관세를 둘러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여전히 영토 확장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고, 이에 따라 유럽 각국은 군비 확충에 여념이 없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방산 무기 수출에 유리한 환경이지만, 이런 불안정한 국제 질서 속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국가 경영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이재명 대통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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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원/탑영어학원 원장
2025.11.1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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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꺼내고 싶지 않은 날. 마음 안에 무언가 가득 차 있거나, 반대로 텅 비어 있는 것 같을 때. 그럴 땐 글 대신 몸으로 나를 느껴보려 한다. 나는 가끔 오감명상이라는 걸 한다. 특별한 건 아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내 감각에 닿는 것들을 하나씩 인식해보는 것이다.가장 먼저는 시각. 눈에 들어오는 모든 색과 빛, 형태들을 바라본다. 벽의 질감,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빛, 바닥에 떨어진 실오라기까지. 그 모든 것들이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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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주)마고 대표, 공인회계사
2025.10.3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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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어머니를 여의고, 많은 생각과 긴 방황을 했습니다. 부모님의 바람대로 되진 못했지만 나름 자식으로서 역할을 하느라 30년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30년은 남편으로서, 또 아빠로서 애써왔지요. 대부분이 겪는 삶의 궤적이었습니다. 살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걸 알 순 없으나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나만을 위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졸릴 때 자고, 배고플 때 먹고, 걷고 싶을 때 걸으면서 나의 호흡대로 원하는 일만 하고 싶었지요. 대부분의 바람이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일에 뛰어들었습니다.누군가 고향을 물으면 할 말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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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근/작가, 성평등과 자녀교육 강사
2025.10.27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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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의 계절, 벼베기가 한창인 이때 연일 큰 비가 내려 농부님들 시름이 짙다. 비가 멈추면 후덥한 이상한 가을 장마가 길어도 너무 길다. 다음주엔 갑작스레 겨울처럼 10도로 내려간다는 예보. 올겨울 폭설대비도 걱정해야 하니 기후변화가 기후재난이 된 오늘을 실감한다. 대륙의 건조한 찬바람이 내려오는 이 계절이면 적절히 식었어야 할 바다가 뜨거운 상태로 만나 장마전선을 만들었다. 해수열파로 얕은 바다에 둘러쌓인 한반도 주변 해수 온도계는 지구 평균 상승률을 훨씬 웃돌아 수온 현황 지도를 보면 불타듯 빨갛다.어제는 해남군자원순환페스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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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선/해남탐조모임새봄 활동가, 땅끝아해 대표
2025.10.2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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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선거에 출마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만약 그때 한국 대통령이 윤석열이라면 ‘아, 한국 큰일 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국가에 나오듯 한국은 ‘하느님이 보우하사’하는 나라가 맞는듯하다. 다행스럽게 윤석열씨가 내란죄로 물러났다. 요즘 미국을 보면 더는 우리가 알던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조지아주의 현대자동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회사에서 막바지 기계 설치와 테스트를 하던 한국 기술자 300명 이상이 마치 남미 마약사범처럼 쇠사슬과 수갑에 묶인 채 끌려갔다. 미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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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원/탑영어학원 원장
2025.10.0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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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전라남도 청년의 날’ 행사에서 유공표창을 받게 됐다. 상을 받아든 내 마음은 복잡했다. 왜 나한테? 라는 질문과 함께 더 잘하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고, 괜한 질투만 더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다.전남형 청년마을 공모사업에 선정돼 지난 2년 동안 눙눙길을 만들어왔다. 사업의 목적에 맞춰 외부 청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설계돼 있었기에, 정해진 예산 틀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재밌고 새로운 시도를 여러 차례 할 수 있었지만, 지역주민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평가에도 익숙해졌다. 수차례의 축제,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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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시골집 고치는 회계사
2025.09.30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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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중반만 해도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의 유럽 영화를 보면 ‘저것들은 인간인가? 짐승인가?’ 하는 생각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베드신은 물론이고, 키스 신조차도 검열에 잘려나가던 한국 영화와는 달리 처음 만난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내게는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국사회의 풍경이 됐습니다.올여름에 예전 드라마 장길산을 봤습니다. 덥기도 하고, 침침한 눈으로 작은 글씨를 읽기가 불편해서 TV 드라마를 선택했지요. 요즘의 드라마와 비교하면 완성도나 배역에서 아쉬운 부분들이 적지 않았으나 원작의 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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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근/작가, 성평등과 자녀교육 강사
2025.09.2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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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 새벽 큰 달이 내 얼을 드나는 굴을 샅샅이 비추사 깨어났습니다. 백중날 지나자마자 이번엔 개기월식으로 깨어났지요. 얼을 비추는 굴이라 얼굴이라지요. 달이라는 큰 거울의 힘에 이끌려 물살이처럼 아이들과 백중바다에 들고 싶었지만 때맞춰 바람 불고 비가 왔습니다. 나의 친애하는 땅끝바다 땅끝 히든어스. 한겨울 끝 대보름사리 한여름 끝 백중사리. 달과 함께 크게 부푸는 바닷물의 장막을 땅이 회전하며 바닷물의 힘이 세지고 갯벌의 품도 가장 커지는 날이었습니다. 해남 내려와 살며 가장 달라진 게 있다면 하늘과 바다를 자주 살피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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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선/해남탐조모임새봄, 활동가 땅끝아해 대표
2025.09.15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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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대한민국이 순리대로 풀리고 있는 기분이다. 대통령은 미국, 일본과 정상회담을 갖고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내란범들은 진실을 감추려고 하지만 특검들이 잘 수사를 하는 듯하다. 3년 전인가? 자주 보던 방송에서 미국 메이저 영화사들이 한국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영화를 3편 정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처음 들었을 땐, 한국이 뭐라고 미국 메이저 영화사들이 그걸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 했다.그때 소개했던 영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올해 6월에 케이팝데몬헌터스라는 애니메이션을 넷플릭스에서 공개했다. 미국회사가 자본을 대고 일본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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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원/탑영어학원 원장
2025.09.0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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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대학시절 배낭 하나 짊어지고 여행을 떠났다. 게스트하우스 거실에 앉아 처음 만난 여행자들과 인사를 나누면 대화는 늘 비슷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 “이름은 뭐야?” 거기서 끝이었다. 무슨 전공인지, 몇 학년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서로 구태여 묻지 않았다. 내가 속한 학교 이름을 말해도, 아마 들어본 적도 없을 터였다. ‘연세대’라는 말은 한국 안에서는 나를 소개하는 유효한 레이블이었지만, 거기선 무의미했다.그들에게 중요한 건 내 소속이나 ‘정체성’이 아니라, 이 순간 함께 여행하고 있는 ‘지금 여기의 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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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시골집 고치는 회계사
2025.09.0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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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평등한 게 하나 있다면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잘난체하는 부자나 권력자도 일반인과 다르지 않지요. 죽음이라고 해서 다 같은 죽음이 아닙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애달픈 죽음이 있는 반면에 조금씩 잊히기도 하고, 더러는 아무 느낌이 없기도 합니다.부모님을 제외하고, 늘 생각나는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목포 출신으로 키가 크고, 부리부리하게 생긴 친구였습니다. 넥타이를 싫어하는 나와는 달리 양복 정장을 좋아했던 그가 10여 년 전에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제주에 살면서도 친구의 부친상에는 다녀왔지만 정작 그의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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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근/작가, 성평등과 자녀교육 강사
2025.08.2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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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과 비슷한 하구 갯벌과 섬 연안의 환경을 지닌 인천에서 오랫동안 자연을 보아온 실력파 선생님들이 대흥사 계곡숲을 찾아왔다. 아이들을 키우며 지역의 제철 자연을 배우면서 숲해설가와 자연안내자로 성장한 엄마들이기도 하다. 때마침 풍성하게 피어난 머귀나무 꽃을 오가는 분주한 벌 나비 가운데 멸절되고 있다는 푸른큰수리팔랑나비도 보고, 막 이소하고 있는 긴꼬리딱새들도 여럿 만나며 탄성을 지른다. 숲길따라 망태버섯과 함께 늦은 대흥란이 막 피어나고 있었다. 대흥사 일대에서 처음 발견되어 이름 붙여진 난초과 부생식물로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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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선/해남탐조모임새봄 활동가, 땅끝아해 대표
2025.08.1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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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는 수도권과 멀리 떨어진 지역을 우선 개발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을 정책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서울로부터 가장 먼 해남은 이 정부 들어서 기회의 땅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해남군도 농어촌수도를 목표로 여러 정책을 만들어가고 있다.(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없지만)또 솔라시도를 중심으로 기업, 자족도시를 꿈꾸고 있으며, 최근에는 RE100 국가산단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이 모든 게 다 성공하기를 기원한다.해남으로 귀촌한 지도 10년이 지났다. 귀촌할 때만 해도 해남 인구는 8만을 거뜬히 넘고 있었는데, 지금은 6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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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원/탑영어학원 원장
2025.08.1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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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슬픔의 온도는 세월을 따라 조금씩 희미해지고, 기억은 때때로 형식에 머무른다. 평화의 소녀상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불편함이 머물렀다. 말없이 앉아 있는 그 조각상은 너무나 처연했고, 정형화된 슬픔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왜일까. 나는 왜 그 옆에 놓인 의자에 앉고 싶지 않았을까. 그 이유를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는 알겠다. 어쩌면 우리는 소녀상이 아니라, 마이크를 든 할머니상을 세웠어야 했던 게 아닐까.일본군 성노예 생존자 할머니들은 단지 고통을 겪은 생존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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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공인회계사, 눙눙길 대표
2025.07.2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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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지나도 꾸준히 만나는 이가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이도 있습니다. 학교나 사회에서 인연 맺은 사람만이 아니라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자매도 마찬가지입니다. 만나서 반갑고, 즐거우면 관계가 지속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렵습니다.이십 대의 나는 고집불통이었습니다.“야, 말 좀 붙여도 되냐?” 벤치에 앉아있던 내게 키가 껑충하고, 부리부리하게 생긴 남학생이 물었습니다. ‘이 녀석은 뭔데 귀찮게 하지?’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법학과생인 녀석과 배짱이 맞아서 바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형, 말 좀 붙여도 될까요?” 학교 잔디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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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근/작가, 성평등과 자녀교육 강사
2025.07.2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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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시골재생프로젝트가 한창인 ‘눙눙길’ 친구들과 해남 최초로 ‘다크투어와 지오투어’를 결합한 프로그램을 제안해 진행했다. 나보다 앞서 또는 나중에 귀촌한 젊은 친구들과 해남 출신 국내 최고의 현장 지질학자와 함께 지금 여기 이 땅에 출현한 인간 지층 ‘돌덕후’가 되어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줄무늬 바위 지층에 앉아 퇴적층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대부분 지질수업은 처음이었지만, 생명들이 물질로 돌아가 유정 무정이 유전하며 쌓여가는 시간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엄청난 힘이 작용하며 만들어졌을 단층들이 만든 크고 작은 계단 무늬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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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선/해남탐조모임새봄 활동가 땅끝아해 대표
2025.07.1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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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나라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 출근 안 하는 대통령에서 퇴근 안 하는 대통령으로 바뀌니 주식도 오르고 소비자심리지수도 108을 넘어섰다. 하지만 정상적인 국가경영이 이뤄지기는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해 보인다. 올여름은 유난히 더울 거라고 기상청이 장기예보를 한 지도 한참 지났다. 7월부터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될 것이다. 곳곳에서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고가 이어지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는 더 이상 담론이 아닌 산업의 현실이 됐다.당장 내년부터 유럽에 수출되는 제품, 특히 철강,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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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원(탑영어학원 원장)
2025.07.0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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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기껏해야 여러분에게 한 가지 사소한 사랑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 즉 여성이 픽션을 쓰고 싶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뿐이었지요.”버지니아 울프는 1928년작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 자기만의 방과 1년에 500파운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100년 뒤 자기만의 방과 소득을 가진 교육받은 여성의 삶을 상상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 해남에서 자기만의 삶을 살고 있는 세 명의 친구들이 모여, ‘Q농캠프 특집’이란 이름으로 전국에서 온 낯선 여성들을 자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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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시골집 고치는 회계사
2025.06.30 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