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천(전 해남동초 교사)

소슬바람이 붑니다. 나무들은 겨울을 예감하고 갈무리를 시작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을만 되면 등화가친(燈火可親), 독서의 계절이라고 책 읽기를 강조하더니만 이제는 그런 말들조차 한 시대의 유물처럼 퍼석퍼석해졌습니다.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글자나 그림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 책입니다. 책은 일반 공산품과는 달리 문화 상품이며, 한 시대의 사유의 창고이며,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알려주는 지식의 온도계입니다. 책은 사색과 깨달음을 통해 정신을 벼리게 해주는 숫돌과도 같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13 국민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성인의 71.5%, 초⋅중⋅고 학생의 73.6%가 ‘독서는 사회생활과 학교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 다수가 ’독서는 좋은 것‘이라는 명제에는 동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독서량은 초라합니다. 우리나라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은 9.2권으로 OECD 가입 국가 중 최하위입니다. 유엔 191개 회원국 중에서도 166위라고 하니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얼마나 책을 읽지 않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성인의 월평균 독서량이 9.2권이라면 한 권의 책을 300페이지 분량으로 계산했을 경우에 하루에 대략 7페이지 남짓한 분량을 읽는 수준이고 보면 결코 많은 독서량은 아닙니다.
1900년대 이후 세계 노벨상의 29%를 차지한 유대인들은 집을 지을 때 서재를 중앙 부분에 배치한다고 합니다. 추사 김정희는 “가슴 속에 만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 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고 했습니다.


소설가 황순원 선생은 “되읽고 싶은 책을 한 권이라도 챙기고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고 했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업주 빌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은 조국도 어머니도 아닌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었다. 독서하는 습관은 세계에서 가장 좋다는 하버드대 졸업장보다도 낫다”라고 했습니다. 디지털 신화를 창조한 그도 컴퓨터가 책 읽기를 대신해 줄 수 없으며, 반드시 책을 통해 내공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빌게이츠의 말이 아닐지라도 독서는 자본과 속도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황폐해지기 쉬운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비타민과 같은 것입니다.


공자의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일화가 있습니다. 종이가 없던 시절에는 대나무에 글자를 써서 책으로 만들어 사용(使用)했었는데, 공자(孔子)가 책을 하도 많이 읽어서 그것을 엮어 놓은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단 데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공자의 공자 됨을 엿볼 수 있는 말이 아닐는지요.
책은 발명품 이상의 것입니다. 앞선 세상을 예측하기도 하고 과거를 되돌아볼 수도 있습니다, 어느 부족은 자신들의 역사를 온몸에 문신으로 새겨서 전하기도 한답니다. 시인 고은은 “책은 자궁이며 책과의 만남을 통해 그때그때마다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당나라의 문호 한유가 아들의 독서를 권장하기 위해 쓴 시의 한 부분입니다.
목지취규구(木之就規矩)-나무가 각재나 원형이 되는 것은 / 재재장륜여(在梓匠輪輿)-목수의 손에 달려 있고 / 인지능위인(人之能爲人)-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 유복유시서(有腹有詩書)-머리에 시서(詩書)가 들어서이다.


책을 읽는 동물은 오직 사람뿐입니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사유(思惟)는 인간 고유의 속성이기 때문에 책은 생각을 발효시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책을 단 한권만 읽은 사람이랍니다. 디지털 속도로 빨라지고 바빠지는 조류에 휩쓸려 나를 상실하기 쉬운 요즈음, 독서를 통해 거칠어진 내면의 뜰을 정갈하게 비질해 봄은 어떨는지요. 
과거를 돌아보려면 박물관으로 가십시오. 미래를 설계하려면 도서관으로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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