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석 천(전 해남동초 교사)

찔레꽃 피는 5월이 되면 부모님이 그립습니다. 시간은 모든 것을 퍼석퍼석하게 만들고 만다더니 이승을 떠나신 지 30여 년이 지난 부모님의 얼굴은 형체 없는 연기처럼 아물아물합니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부모님이 그리운 것은 하늘이 맺어준 부모와 자식 사이의 천륜(天倫)을 인간의 힘으로 끊을 수가 없는 것이겠죠. ‘어버이날’이 가까워지면 그리움의 무게를 못 이겨 정채봉 시인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이라는 시를 읊조려봅니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 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한번 부모는 영원한 부모요, 한번 자식은 영원한 자식 됨이 천륜일진데… 작년에 종영된 KBS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불효청구소송을 제기한 아버지와 삼남매가 법원에서 만난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픽션(fiction)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요즘 효도계약서 작성과 불효소송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법원에서 효도계약을 불이행한 자녀에게 상속 무효를 선고한 판례가 생긴 후 효도계약서를 작성하는 부모들이 많아졌다고.
효도계약서는 부모가 바라는 부양 의무를 구체적으로 적은 각서입니다. 이 계약서는 자녀가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부모가 재산을 되찾아갈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구요. ‘부(父)는 자(子)에게 〇〇아파트 1채를 증여한다. 자(子)는 부(父)에게 매월 〇〇만원의 생활비를 지급해야 한다’처럼 그 내용이 구체적이어야 효력이 발생한답니다. 또, 이런 분위기 탓인지 네이버(Naver) 지식 인(in)에도 효도 계약에 관한 문의가 종종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문제를 법의 잣대로 해결하려는 슬픈 시대가 되었습니다.
민법 제947조에는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 간, 기타 생계를 같이 하는 친족 간에는 서로 부양의무가 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의무가 윤리가 아니라 계약으로 성립된다면 부모와 자식을 천륜지간이라 할 수 있을까요? 어느 자료에 의하면 국민의 77.3%가 효도계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니… 100세 시대에 별다른 대책 없이 침묵의 횡단을 해야 하는 노후, 그리고 살아가기가 팍팍한 젊은이들의 현실 앞에서 부모와 자식이라는 천륜도 무너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따스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 아파트 구매 계약을 하듯 효도마저 계약으로 해야 할 것인가?’ 효도 계약서와 불효 소송에 관한 이야기가 이슈가 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참담합니다.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까마귀가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준다는 뜻으로 자식이 자라서 길러준 부모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뜻이죠. 저는 까마귀가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본 적은 없습니다.
아마 이 이야기는 교육용 이야기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럴지라도 그런 이야기가 격세지감이 들어서야, 원!
세상이 각박해졌습니다. 사람 없는 섬에 표류되어 사람을 그리워하다 나중엔 오히려 사람이 무서워졌다는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처럼 사람이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세상이 되어 갑니다.
그 근원지(根源地)는 가정입니다. 방치되는 노인들, 자녀 학대, 이혼율 증가 등의 사회적 문제는 표류하는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제 뉴스브리핑에 따르면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 1주일에 채 1시간도 안 되는 청소년이 전체의 56%, 통계청의 '2016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매일 부모와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청소년도 전체의 37%에 불과하다니 가족 간의 대화 단절은 이미 심각한 상태입니다.
가정의 달이라 불리는 5월입니다. 감사의 달이기도 한 5월엔 ‘부모 노릇’과 ‘자식 노릇’에 대해 되돌아보는 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독일의 철학자 칸트의 말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자식을 기르는 부모야말로 미래를 돌보는 사람이라는 것을 가슴속 깊이 새겨야 한다. 자식들이 조금씩 나아짐으로써 인류의 미래는 조금씩 진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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