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 재 희(북멘토)

1592년 4월13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규슈 나고야성에 결집시킨 총 20만 대군을 앞세워 조선을 침공했다. 선봉 부대는 4월14일 부산진을 침공한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였다. 부산진 첨사 정발이 항전하다 전사하고, 15일에는 동래부사 송상현이 동래성을 사수하다 전사했다. 7년 전쟁의 서막은 이렇게 시작됐다.
우리가 역사를 왜 돌아보는가. 역사는 암기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고찰하기 위한 지도이지 않겠는가. 지도는 때론 사전식 편람처럼 찾아볼 수 있는 용이성이 있는 것이다. 마치 인터넷 포털의 검색 엔진처럼 말이다. 이제 곰곰이 생각해보자. 오늘날 우리는 어떤 키워드로 검색할 것인지 말이다.
정부는 경주지역을 이르면 22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할 것임을 검토할 것으로 밝혀졌다. ‘여당과 청와대, 정부가 경북 경주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키로 결정함에 따라 재정 지원과 세금 감면 등 혜택을 볼 예정이지만 정작 지역 관광업계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국제관광도시 경주의 이미지가 한순간에 재난도시로 바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연이은 지진에 가뜩이나 가을특수가 실종된 마당에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면 위험지역이라는 인식이 퍼져 관광객 급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일보 21일 자 기사 내용이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사회의 ‘안전’은 끊임없는 화두로 제시되고 있다. 때 늦은 ‘라케시 카푸어’ 옥시레킷벤키저 최고경영자의 사과 역시 이러한 화두 속에 포섭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말인즉슨, 우리는 언제까지 성을 버리고 떠난 선조에게 ‘처분만, 제가만 내려주십사’는 식의 중앙 정부 중심의 방침만을 학수고대할 것인가. 여전히 우리는 제승방략(制勝方略)체제의 구조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인가.
국민 안전의 문제 해결의 핵심적 주체는 국민의 생활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지자체가 돼야 하고, 그것에 중앙정부는 서포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모든 결정이 서울 중심의 중앙 결정이 떨어지기까지 사실상 지방자치단체에 몰려오는 왜적은 무주공산식으로 입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를 두고 지역주의라고 말을 하며 마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군웅 할거주의라 싸잡아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지역주의라기보다는 지방분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지역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지역의 자주성을 유지하면서 그 연대·협력을 촉진하려는 입장이다. 반면에 지역 할거주의는 전근대 사회에 있어서 몇몇 지도급 인사가 국토나 권력 등을 나눠 갖고 제각기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려는 정치적 행동양식 내지 그 현상을 뜻했던 것이나 오늘날에는 파벌주의(派閥主義) 또는 분파주의(分派主義)와 거의 같은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좀 더 나아가자면, 지역주의의 올바른 발전은 (바꾸어 말하면 지방분권이라 함은) 풀뿌리 조직 네트워크의 연대로 각개 국민의 생활권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면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다. 반면 지금 같은 지역 할거주의로는 언제나 자치단체는 중앙 정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몇몇 군웅들의 제단 역할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 안전문제 역시 즉각적인 대처가 어렵다. 획일화된 안전 매뉴얼이 아닌, 그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한 매뉴얼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그 지역 시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은 진정한 지방분권으로부터 시작된다.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