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연 명(독자위원회 위원)

우리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스스로 자처해 왔다. 그건 말할 나위도 없이 인간은 동물과 달리 이성을 지니고 있을뿐더러 무엇보다 언어 소통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성(지혜)을 힘으로 승화시켜 만물 가운데 우뚝, 어쩌면 지고지순의 존재로 군림하고 나아가 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를 공식화 시킨다면 ‘이성+소통=힘’이라는 논리를 펼 수 있을 것이다.
원숭이를 비롯해 일부 짐승들도 어느 정도의 지능을 지니고 집단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지능지수가 극히 미미할뿐더러 어디까지나 본능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서로 간 의사소통이 부족해 인간과 같은 고도의 사회는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지구상 만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언어 소통의 능력을 무한대로 극대화시켜 드디어는 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으니 말은 곧 우리 인간의 무기이자 힘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은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냄새도 없고 또한 손에 잡히지도 않는 글자 그대로 완전한 무형체이다. 그래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숨김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말이다. 그 사람의 생각이 고우면 고운만큼 향기가 풍기고 그 사람의 행동이 올곧고 믿음직하면 감동을 주고 빛깔을 발한다.
말은 내 입안에 있을 때는 내가 부리는 종이지만 입 밖에 나가면 도리어 나를 부리는 주인이 된다는 말이 있다. 말하기 쉽다고 해서, 또 말로는 안 되는 것이 없다고 해서, ‘믿거나 말거나, 아니면 말고’ 식으로 무책임하게 끝나는 것이 말이 아니다. 입 밖에 나간 말은 그 말에 책임을 추궁한다. 집요하리만큼 끝까지 말이다. 이런 경우를 일컬어 주객전도라 하는 것이다. 권리가 있으면 책임도 따라야 하듯, 말이 인간에게 힘을 실어줬으니 책임도 안겨줘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지사라 할 것이다.
침묵은 금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말은 쓰레기란 것인가? 인간만의 전유물인데 침묵을 강요하는 것인 이율배반이요, 어쩌면 인간임을 스스로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입을 다물라고 하는 것보다 말을 아끼라는 뜻이다. 무엇이든 많아지고 흔해 빠지면 천해지기 마련이다. 요즘 세상이 하수상한지 막말 파동으로 말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천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곧 우리 인간들도 동시다발로 비천해지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예부터 장부일언중천금이라고 했는데, 인간의 존엄을 스스로 짓밟고 있으니 이 어찌 부끄럽지 않으랴. 그래서인지 때맞춰 침묵은 금이라고 외쳐대고 있는 자성의 목소리가 자못 높아가고 있다.
침묵은 결코 벙어리의 답답함이 아니고 도리어 침묵, 그 세계는 모든 이해를 넘어선 근원적 평화가 깃들어 있다고 하겠다.
죽음에 임박한 공자의 병석에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제자들을 대표해 자공이 공자에게 유언(가르침)을 청했다. 공자가 대답했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겠다.”
“스승께서 아무 말씀 하지 않으면 저희들이 어떻게 도를 이어받아 전하겠습니까?”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사시가 운행되고 만물이 성장하지만 무슨 말 하더냐?” 하고는 공자가 입을 다물었다. 공자의 유언이 있다 없다 후대의 학자들이 논란을 거듭하고 있으나 공자는 분명 유언을 남겼다. 그것은 끝도 없이 크고 밑도 없이 긴 유언을, 공자가 침묵할 때 밖에선 새가 울었고 바람도 불었을 것이다. 그리고 구름도 흘러갔을 것이며, 별도 빛났을 것이다. 그렇게 온 우주가 숨을 쉬었을 것이다. 그 숨결이 바로 공자의 유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말의 범람 속에 살고 있다. 말이란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아름다운 말만 하고 살아도 시간이 부족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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