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석 천(전 해남동초 교사)

우리가 쫓겨나지 않아도 될 유일한 낙원은 그리움이라고 했던가 싶습니다. 장 파울의 말이죠. 기억이 머릿속의 메마른 기록이라면 그리움은 가슴에 품은 물기 촉촉한 삶의 흔적이거나 의미를 담은 저마다의 창고 같은 것입니다. 오늘은 힘들고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주셨던 어떤 분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인생길을 가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시성(詩聖) 괴테도 75년의 긴 생애를 돌아보면서 ‘나의 생활은 괴로움과 일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75년 동안 4주일도 참된 행복을 맛보지 못했다’고 한탄했을까요? 
저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삶의 먹구름이 잔뜩 끼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닷길로 한 시간여 걸리는 소안도라는 섬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육지와 섬 사이를 막고 있는 파도도 두려웠지만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삶의 무게는 더 힘들었습니다. 집에서 어려운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바다는 감옥의 창살 같았습니다.
그곳에서 지금은 고인이 되신 k교장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성격이 무지 급하고 각단지셨지만 가슴이 따스한 분이셨습니다.
첫 만남에서 그분에게 제 형편을 말씀드렸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육지에 나갔다 오겠노라고 말씀을 드리면 “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일 다 마치고 온나이.”
섬으로 돌아올 때에도 안개가 섬을 가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전화를 드리면 “안개 걷힌 것 보고 차분히 오거라이”
그분의 따뜻한 말씀과 배려는 어려움을 이기는 힘이 되었습니다.
가까스로 일 년을 보내고 통근이 가능한 육지에 발을 딛었습니다. 발령이 나서 인사를 드리러 갔던 날 “일 년 동안 너무 고생했다. 고생하는 것을 볼 때마다 미안했다. 내 마음을 담았으니 육지에 나가면 구두나 한 켤레 사서 신어라.” 하시면서 봉투 하나를 쥐어 주셨습니다. 그 분의 따스한 말씀에 섬 생활의 어려움이 녹아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마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살지만 어떤 사람은 쉬이 잊히고 어떤 사람은 기억조차 하기 싫고 어떤 사람은 가슴에 품고 있게 마련이지요. K교장선생님은 사람 냄새가 나는 따스한 분이셨습니다. 그래 그 분에게 진 빚은 꼭 갚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덧없는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습니다. 풍진 세상살이에 매이다 보니 전화 한번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그 섬에 사신다는 분을 만났습니다.
“ k교장선생님은 잘 계신가요?”
“그분은 퇴임하신 후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는디 정말 몰랐소?”
가슴이 무거웠습니다. 그분에게 진 빚이 산더미 같은데 갚을 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날씨가 꾸물대는 오늘 같은 날은 소금기 머금은 소안도의 바다 냄새가 향수처럼 밀려오고 무지개다리 저편에 계신 그분이 새삼스레 그리워집니다. 그곳에도 편지가 배달될 수만 있다면 마음을 담아 보내고 싶습니다. 시성 괴테는 ‘편지란 아름답고 가장 가까운 삶의 숨결’이라 했는가 하면 17세기 영국의 시인 존 던은 ‘편지는 키스보다 더 강하게 두 영혼을 결합해 준다’고 했던가 싶습니다. 그분은 이승을 떠났지만 떼어낼 수 없는 그분과의 인연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있습니다.
한 해를 정리해야 할 때입니다. 저처럼 부칠 수 없는 편지를 담고 살지 않도록 세밑에는 주변을 돌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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