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성 훈(농산어촌해남문화융합센터 소장)

청년의 문제는 지금껏 감시와 통제 그리고 시혜적 베풂으로 간주돼 왔다. 그것은 ‘희망을 잃어버린 세대에 대한 사회적 멘토나 멘티스트’로서, ‘꿈을 잃어버린 무기력증에 빠진 우울증 환자’로서, 그 상황이나 본질을 사회적 구조에서 보지 않고 개인에 두고 자꾸 축소시켜왔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에 맞춰 한국판 득도 세대, 혹은 이케아 세대, N포 세대, 그 전에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등, 기표만 바뀌었지 기의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젊은 세대들 사회에서 유행했던 책이 있다.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절망의 나라 행복한 젊은이들』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한해 전에 일본에서 출간했지만 한국에서는 2016년에 소개된 『희망 난민』이 있다. 저자는 피스 보트 참가자의 사례를 통해 승인 공동체의 문제를 거론한다. 피스 보트는 세계에서 나를 찾고 싶은 젊은이들이 오르는 크루즈 여행을 일컫는다. 승인 공동체는 사회학자 스즈키 겐스케의 논리로, 자기 결정과 자기 책임이 강조되는 신자유주의 사회의 외부에 위치한 그냥 있는 그대로 서로를 인정하는 관계에 바탕을 둠으로써 그 존재적 안심을 확보해주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무엇이 돼야 한다는 겉치장을 벗기고 살아 숨 쉬는 그 자체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역설로 생각해본다면 너무 많은 가림막을 젊은이들에게 강요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캥거루족, 헬리콥터 족 등 수많은 사육(?)의 이름 아래에서 청년들의 자발적 움직임을 사실상 사회가 거세를 시켜놓고, 방구석에만 처박혀 꿈을 단념하는 하키코모리 족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승인 공동체의 입장이란 대등한 지위에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도록 이 사회의 규칙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피스보트를 사회라는 구조로 환유하는 것이다. 이것은 약한 고리의 청년 문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지점이나 시발점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해남에서 각 분야별 사람들이 구체적인 정책 대안 로드 맵을 만들어보자. 대선이나 차후의 지방자치제단체장 선거에 있어, 일부 정치인들이 들고 나오는 공약을 선별적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군민의 힘으로 공약을 만들고, 이를 선택함에 있어 우선순위 토의로 정해보자. 농업분야의 전문가, 문화 분야의 전문가, 복지 분야의 전문가 등. 전문가라고 해서 그것에 필요한 학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 삶에 있어 이미 전문가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토론은 찬반을 나눠 진행할 수도 있고, 브레인스토밍처럼 마구잡이식 의견을 나열을 해도 좋다. 토론과 토의를 할 때마다 그 상황에 맞는 규칙만 우리가 약속하고 진행한다면, 생각지도 않은 다양한 대안이 나올 수 있다. 한 사람의 머리는 통제와 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열 사람, 백 사람의 생각과 행동의 시너지는 막을 수 없다. 그 자체가 향후 우리 사회를 바꾸는 바람의 역할을 할 것이다.
더들리와 스티븐스 재판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1884년 영국의 식인 사건을 다룬 재판이다. 마이클 샌델의『정의란 무엇인가』는 책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으며, 로스쿨과 법학에서 공리주의를 다룰 때 빠지지 않는 판례이다.
사건을 요약하면, 파도가 배를 강타했고, 미뇨넷 호는 침몰했다. 승무원 넷은 구명보트로 탈출했으나, 식량은 통조림 두개에 물도 없었다. 며칠이 지나자 식량이 다 떨어졌다. 더들리(선장)는 선원의 관습에 따라 제비뽑기를 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죽을 사람을 정하자고 했다. 결론만 말하면, 제비뽑기는 무산됐지만, 17살 파커가 희생양이 됐다. 더들리와 스티븐스는 결과적으로 1명이 죽어서 3명이 생존한 게 낫다고 주장했으나, 검사는 그 주장에 흔들리지 않았고, 살인은 살인이라며 그들을 감옥에 보냈다.
우리는 무엇이 다수이고 소수인지, 그리고 어떤 것을 감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더들리와 스티븐스 재판에 나오는 제비뽑기의 관습적 규칙이 정당한지도 따져 물어야 한다.
관습적 규칙이란, 우리가 암묵적으로 합의해 오고 승인한 약속이다. 상식이라고 말하는 것, 정의라고 말하는 것, 소통이라고 말하는 것의 공통점은 그것이 왜 그런지에 대한 이유를 이해했을 때 시작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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