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석 천(전 해남동초 교사)

먼지에서도 향기가 난다는 찬란한 봄이다.
봄은 매화로 운다.
당나라 문인 한유의 시 ‘내가 우는 이유’ 중 한 부분이다.
“자연의 계절 변화도 가장 잘 우는 것을 택하여 그것을 빌려 운다. 새는 봄을 울고 천둥은 여름을 울며 벌레는 가을을 바람은 겨울을 운다”
매화가 한창이다.
한유의 시에 빗대어본다면 봄은 매화로 운다.
매화. 말만 들어도 부추김이 있다. 설레임이 살아난다.
겨우내 움츠렸던 가지 끝에 달린 새악시 같은 꽃이다. 메마른 대지에 내린 단비가 반갑듯 차가움을 이겨내고 피워낸 처음 꽃이기에 진하게 반갑다. 한편 겨울을 건너온 인고가 담긴 꽃이기에 안쓰럽기도 하다. 어떤 그리움들이 담긴 꽃이기에 정겹기도 하다.
이상(李箱)은 계정의 변화를 아내의 양말 색깔을 보고 눈치챘다던데, 나는 앞집의 매화를 보며 계절을 느껴왔다. 지금 매화는 계절을 깨우고 그 이름만큼이나 고아(高雅)하다.
매화는 코끝에서 은은하다. 오동나무는 천년을 묵어도 그 속에 노래를 지니고 있고 매화는 평생 추위와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지. 梧千年老恒藏曲(오천년로항장곡)이요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이라.
나는 매화보다는 벚꽃을 좋아한다. 봄을 담아 온 반가움이야 매화에 비길 데 없지만 화르르 피었다 후루룩 지는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꽃들은 화사하게 피었다가도 이지러질 때는 그 부대끼는 모습이 추하다. 기왕에 꽃이라는 이름으로 피었으니 꽃처럼 지면 좋으련만 지는 것이 대부분 그렇듯 꽃이 지는 모습은 안쓰럽다. 꽃은 꽃이었을 때 꽃이지 지는 꽃을 꽃이라 하던가!
하지만 백옥 같은 벚꽃은 피어남도 화사하지만 지는 것도 아름답다. 그래 벚꽃이 바람에 지는 날이면 그걸 꽃비라 한다. 지는 모습조차 아름다운 것이 벚꽃이다.
사람도 벚꽃 같았으면 오죽 좋으리….
저녁을 먹으며 술람미(wife)와 나눈 이야기다.
“여보,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더니 권력이 저무는 모습이 추하네. 난 부대끼지 않고 지는 꽃이 좋아”
“부대끼지 않고 지는 꽃이 있겄오? 다 부대끼제. 그라고 뭐 그렇게 어려운 말을 쓰요. 달도 차며는 기우는 것이 진리인데”
“그런데 말일세. 제 계절이 끝났으면 지는 것이 순리일진데 저리 지지 않으려고 몸부림하면 할수록 추하게 보이기만 하네”
역사를 보면 천하일색으로 한 때 부귀를 누렸던 양귀비의 세도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었다.
꽃이라는 이름도 지는 날은 추한데 하물며 권력(權力)이라는 세(勢)가지는 날은 더더욱 추하다.
지는 꽃은 벚꽃처럼 흐드러지게 날렸으면 한다.
매화 향기 그윽한 날.
매화는 봄을 울면서 피었다.
유심(有心)으로 매화와 눈을 맞춘다. 소나무도 송진의 향을 내뿜으려면 몸에 상처가 나야 한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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