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일(전 해남군지역혁신협의회 의장)

 

박철환 군수는 결국 군수 보궐선거 여지를 없애버렸습니다. 해남군정은 2년간 군수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내 몰리고 있습니다. 설령 혐의가 법리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손 치더라도 군민의 지지를 받아 군수가 되었던 분으로서 군민들에게 폐 끼치는 쪽은 피해야 했습니다.
지금 우리 지방자치는 매우 기형적입니다. 중앙정부가 권한과 돈을 쥐고 있는 상태에서 군수가 행정집행을 독점하는 중앙집권적 지방자치 구조입니다. 군정집행이 군수에 복속되기 때문에 군민과 군공무원은 군수 얼굴만 쳐다보기 마련입니다. 이런 제왕적 군수체제는 군정이 부조리의 온상이 되어 지역경쟁력의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군정이 부조리에 휩싸여 3대째 연속 절단됐으니 어떻겠습니까? 실로 모순의 극치라고 말할 수밖에요.

 작금의 상황은 유영걸 군수권한대행께 큰 부담이 될 것입니다. 지난 1년간 군수공백의 잔재가 쌓인 상태에서 또 1년간 군수공백이 지속되면 군정이 엄청난 폐단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부군수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서 군수를 보좌하는 위치인데 공직 말년에 무거운 짐을 지셨습니다. 듣자니 유 대행께선 올 12월에 공로연수에 들어 가신다고요. 때문에 군민들은 8개월짜리 군수권한대행 동안 군정난맥이 지속되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저는 오늘 22년 전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1995년 4월17일 문병일 군수께서 취임하십니다. 그런데 문 군수는 역대 최단기인 53일짜리 관선군수였습니다. 전임군수가 정년퇴임으로 물러난 후부터 첫 민선군수가 취임하기 전까지로 임기가 정해진 이른바 땜방군수였습니다. 53일이란 기간은 군정 업무파악은커녕 우리군 지리를 익히기에도 부족할 시간이었습니다. 게다가 첫 민선군수가 뽑히는 선거시기라 군민과 군공무원들이 마지막 관선군수를 안중에 둘리 만무했습니다.  
하지만 문 군수는 취임하자마자 읍면 통계정비와 양서 10만권 모으기를 재임 50일 과제로 내걸었습니다. 관선군수시대에서 민선군수시대로 이행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행정 전환기 새 바람운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민선시대엔 지역특색과 창의적 군정이 요구되기 때문에 형식적이던 관선시대 행정통계를 바로 잡자는 거였습니다. 또한 향우들을 대상으로 내 고향 담배 사 피우기 운동을 벌여 군립도서관 건립의 종자돈을 마련하자고 했습니다. 향후들이 1000원짜리 고향담배 한 갑을 사면 460원이 우리군 세수로 떨어지기 때문에 50일간 5억원을 조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고향담배 사 피우기 운동 목표량이 군공무원들에게 할당되자 군청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서로서로 각지 향우 연고를 찾아 나섰고, 각 실과는 경쟁의 열기를 뿜었습니다. 이 운동 50일 만에 당초 목표의 1.5배인 7억7000만원의 도서관 건립기금이 마련됐고, 이후 이 돈은 해남문화예술회관 건립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53일짜리 군수의 아름다운 기적이었습니다.  
박철환 군수가 4월9일로 기한된 사퇴카드를 버리자 군민들의 시선은 유 권한대행 쪽으로 쏠리고 있습니다. 군수보궐선거가 물 건너 간 이상 유 대행께서 해남호 선장으로서 확고한 의지를 세워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연이은 군정중단에 군민들의 좌절감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작은 이웃 군들의 변화 바람에도 어깨가 움츠러집니다. 우리군에는 아직껏 권위주의시대 공직문화가 상존하고 있습니다. 군공무원들이 신바람을 맛본 지 오랩니다. 
하지만 해남은 자원부촌이면서 역동적인 고장입니다. 지금은 비록 불량정치의 늪에 빠져있지만 잠재역량은 전국 어느 지역보다 더 크다 자부합니다. 군공무원들 단합된 힘이 전국 최고 해남문예회관의 초석이 되었듯 공직사회 역량도 출중합니다. 

 유영걸 군수권한대행님! 소신의 나래를 펴십시오. 땅끝이 희망으로 가는 시작점이듯 좌절의 늪에 빠진 군민들에게 희망의 변곡점을 찍어주십시오. 공직사회에 신바람의 밑불을 질러 주십시오. 그리고 언제든 군민들에게 손 내미세요. 겉치레식 행사참여는 지양하더라도 주민들과 진솔하게 대화하십시오. 주민참여와 민관협치를 군정변화의 지렛대로 삼으십시오. 그리하여 해남에서 공직생활의 멋진 대미를 장식하십시오.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