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군, 수요자 중심 조직개편 기대한다 

▲ 박상일(전 해남군지역혁신협의회 의장)

 최근 해남군이 직제개편을 위한 조직진단에 들어갔다고 한다. 공직사회를 일 중심으로 변화시키려는 유영걸 군수권한대행의 의지로 읽혀진다. 이번 일이 공직사회가 시대추세를 잘 수용하고 신바람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길 바라면서 몇 가지 사족을 달아본다. 해남군이 조직을 제대로 진단하려면 먼저 조직의 단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관치행정 때 군은 중앙과 도의 지침을 하달받아 시행하는 말단기관이었다. 당시 내무과와 재무과는 대민부서를 관리 감독하는 통제부서였다. 그러나 자치시대엔 대민부서가 꽃이 되었고, 과거 통제부서들은 지원부서로 개념을 바꾼다. 이에 따라 대다수 지자체들은 대민부서를 1층으로 옮기는 등 청사배치를 주민편의 중심으로 바꾼다, 그런데 해남군청사 1층 현관 오른쪽은 관치시대 내무과 자리에 행정지원과가, 왼쪽은 관치시대 재무과 자리에 세무회계과가 이름만 바뀐 채 자리 잡고 있다. 해남군정이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상징적 모습이다. 

 민선자치시대가 열리면서 지자체들은 직제개편작업을 착수했다. 이때 혁신적 지자체들은 대민행정의 수요와 추세를 파악해 직제를 세우고 비대민부서는 이를 지원하는 쪽으로 가닥 잡아갔다. 그런데 해남군 직제개편 준비 작업은 공무원들의 업무량을 조사하는 일로부터 시작됐다. 자연스레 책상머리 업무인 기안량이 업무량의 우선조건이 됐고, 대민현장을 뛰어다니는 업무는 무시당하게 된다. 해남군은 20년 넘도록 이 구조의 틀을 깨지 못하고 있다.

 공직사회 기능과 역할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관치시대엔 주민들 앞에서 이끄는 선도기능이었다. 90년대 민주화시대엔 고객중심의 기업문화 영향으로 서비스기능이 중요시되었다. 오늘날 자치혁신시대엔 민관협치와 함께 주민 뒷바라지 기능이 대세를 이룬다. 그렇다면 해남군정은 잘 나가는 지자체보다 한 두 세대 뒤진 셈이다. 때문에 이번 직제개편 준비 작업은 과거와 질을 달리해야 한다. 직제를 시대추세에 맞추려면 행정수요자 쪽에서부터 가닥 잡아야 옳다. 또다시 공급자중심 사고로 나서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 먼저 주민 쪽으로 귀를 열어야 한다. 주민들이 군 행정에 대해 어떻게 불편해하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바로 수렴해야 수요자중심 행정의 기틀을 짤 수 있다.

 조직은 일 수행의 수단이기 때문에 일 중심 문화를 세우는데 힘써야 한다. 직업이란 단어에서 직(職)은 일의 보람을, 업(業)은 밥벌이 수단을 뜻한다. 공무원은 공무의 보람과 밥벌이 수단이 균형 잡혀야 한다. 그러나 후진적 공직사회일수록 직(職)보다 업(業)에 치중한다. 공무원들이 일의 보람보다 승진과 요직 쪽으로 쏠리는 것은 공무의 신바람 기회가 적다는 반증이자 그만큼 관료의식에 젖어 있다는 표증이다.

 일 중심 문화는 공무원들의 창의의식에서 싹튼다. 공무원들이 민원과 실패를 두려워하면 창의성과 담쌓기 마련이다. 창의성과 혁신이 살아나려면 선의적 실패에 대한 관용이 뒤따라야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벤처기업인들에게 상세판 도전기회를 주어 혁명적 성과를 나타낸 걸 보라! 공무원들에게 책임이란 굴레를 남발하면 복지부동을 조장한다. 하지만 공무원들이 선의적인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면 창의의 나래를 펴고 보람의 신바람을 일으킨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무렵 어미닭이 계란껍질을 쪼아주면 부화 성공률을 크게 높이는데 이를 줄탁동시(啐啄同時)라 한다. 공직사회가 혁신하는데 줄탁동시가 명약이다. 어미닭이 포란하듯 공무원의 선의적 실패에 관용의 리더십을 편다. 어미닭이 병아리를 도와 겉껍질을 쪼는 건 공무원들의 가치창조적인 일을 조장하는 타이밍 리더십이다. 군수 3대가 연이어 공백을 보이는 동안 해남군 공무원들은 창의적인 일보다 현상유지 쪽을 바라보게 됐고, 주민참여를 민원의 지뢰밭으로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창의적 공무원 한명이 주민 500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다. 해남은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질 순 없다. 절망의 바닥을 쳐 희망으로 유턴해야 한다. 공직사회는 희망해남으로 가는 핵심동인이다. 공직사회가 신바람을 내야 주민들이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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