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해남군지역혁신협의회 의장)

 농부화가 김순복 씨가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현산면 향교마을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는 김 씨가 농촌환경을 그린 그림 이야기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그림을 전공하거나 어디서 변변히 사사받은 적 없는 김 씨가 농사짓는 일상을 진솔하게 그려왔다고 한다. 그녀는 고단한 일 틈바구니에도 농촌생활을 일기처럼 그려왔다. 배추모종 심기, 멀칭비닐 걷기, 마늘 밭매기, 고구마 캐기, 대파 소포장 작업 등 농촌 노동 그림과 새참 먹고 낮잠 자기, 마을회관 노래교실, 마을 경로잔치, 금슬 좋은 부부 이야기 등 농촌 생활사 그림 등 다양하다. 색연필로 표현되는 파스텔 톤 그림은 농촌생활을 한결 정감 있고 평화스럽게 연출했다.

 지난 12일 김 씨 그림 70여점이 해남종합병원의 행촌미술관에 걸렸다. 그런데 무명 농촌아낙 김 씨의 그림 전시장이 북적였다. 향교마을 주민들과 김 씨와 함께하는 유기농생산자들이 몰려왔다. “쩌건 성님네 양파밭 아니요?” 낯익은 들 풍경과 마을사람이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를 꽃 피웠다. 대게의 그림전은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는 고고한 분위기지만 이곳 그림전은 목젖 드러내는 웃음과 왁자지껄 이야기가 있는 장거리 같았다. 오픈식 풍경도 이색적이었다. 여러 정치인과 기관장들을 대신해 마을 어르신이 김 씨의 생활사를 꺼내어 축사했다. 김 씨 아들은 5남매를 힘들게 길러오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린 홀어머니 생애를 소개하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평범한 농촌 아낙의 그림전이 왜 이렇게 반향을 일으키는 걸까? 그녀의 그림은 우리 고장 일상의 광경에 대한 공감의 이야기였다. 이 고장 주민 누구나 느낄 낯익은 풍경도 감흥을 일으키는 동인이었다. 또한 그녀의 그림에는 힘든 농업노동에 역동감을 투영시키는 힘이 배어있다. 그녀의 그림은 일과 공동체가 주제라 할 만큼 주는 메시지가 분명했다. 그렇다. 이게 바로 지역문화의 힘이다. 엘리트 중심의 상업문화 일색인 중앙문화와 색다른 문화의 힘이다. 돈의 가치를 쫓는 중앙문화와 달리 지역문화판에선 사람의 가치가 풋풋한 감동으로 살아난다.   
지역문화란 지역주민들 삶의 양식에서 배태된다. 따라서 지역문화의 뿌리는 공동체문화와 생산문화다. 

 사람들은 가능하면 직장, 아이들 학교, 시장, 사교의 장을 자기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두려고 한다. 때문에 자기가 거주하는 고장의 정치, 환경, 교육, 행정 등 어느 것 하나도 자신과 무관하게 여길 수 없다. 
전국이 일일 생활권에 들고 TV, 인터넷을 통해 매일 전 세계의 움직임을 접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자기 생활반경에서 일어나는 일에 가장 많은 관심을 쏟는다. 지역 사람들의 희로애락도 자신의 삶을 규정하는 요소 중의 하나로 여기기 때문에 고장에 봉사하면서 느끼는 보람의 질도 다르기 마련이다. 
이렇듯 같은 환경에서 생활권을 이뤄 어울려 사는 주민생활사는 지역문화와 예술의 심지인 셈이다.
지역사회는 먹고 사는 일이 서로 얽혀있는 유기체다. 대게의 농수산업은 지역에 생산기반을 두고 있다. 읍내에서 장사하든 지역 공무원으로 일하든 지역사회를 지지기반으로 살아간다. 상가주민들은 김이 흉작이 되거나 배추값이 폭락한다는 소식을 민감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때문에 나와 다른 일터도 낯설지 않고 다른 주민의 일도 무심히 여기지 않는다. 유통이 생산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는 생산기반과 유통의 물꼬 트기에 서로 힘 모은다. 

 지역축제를 열고, 도농교류를 하고, 공동브랜드를 만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지역사회는 일터이자 생활의 터다. 농사짓는 논밭이 생활 터전인 마을언저리에 맞닿아있고 매일 출근하는 직장도 사는 곳과 지근에 있다. 때문에 지역문화와 예술은 생산문화를 지향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간 우리사회는 지역문화를 터부시 여겼다. 지역문화를 촌스러움, 미개문화로 폄훼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고유한 생각과 문화양식을 잊어왔다. 이젠 서로 의지하면서 더불어 사는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 일과 놀이가, 공동체와 예술이 아름답게 합치되도록 힘써야 한다. 이 말에 공감하거든 이번 주말 해남종합병원 행촌미술관으로 가시라. 김순복 씨의 풋풋한 그림 속에서 우리네 삶의 자화상을 발견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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