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사유의 시선』  최진석 저 /21세기 북스

 

요즘 시대를 혹자들은 피로의 시대라고 부른다. 무엇이 우리를 피로하게 하는가. 그것은 비교우위의 문화에 있다. 비교우위 문화란 자신의 주체성을 망각하고 타인의 삶에 자신의 존재를 견주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등장했던 말이 엄친아이다. 
엄마 친구의 아들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스티브 잡스의 ‘창의성’을 상상해야 했다. 우린 승과 패를 갈라야 했던 시험문제를 위해 순자의 성악설을 외웠다. 그리고 곧 망각했다. 
암기력이 강한 사람이 수재로 인정받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극단적으로 암기란 중화학 산업 시설이 기반이 됐던 산업화 시대가 낳은 산물이다. 절대다수의 정보량이 부족했던 시기에 암기란 기술이었다. 기술은 배우고 익혀서 활용해야 할 수단이었다. 
이제는 암기하고 기억해서 남의 말을 읊조리는 시대가 아니라 생각의 높이를 칸트처럼, 데카르트처럼 혹은 푸코처럼 올려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아닌 내 시선으로 세상을 마주해야 하는 시대다. 
물론 우리는 꿈을 꿔야 한다고 쉽게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누구는 헤겔의 전도사가 되고 또 누구는 장자의 전도사가 되는 꿈을 말한다. 그래서 그 ‘꿈’이라는 용어는 정작 내 꿈이 아니라 헤겔의 꿈일 수도 있고, 장자의 꿈일 수도 있다. 알맹이는 없고 빈껍데기만 있는 유령을 우리는 목표로 잡는다. 
“철학적 높이에 도달한다는 것은 가장 높은 차원에서 시대를 관념적으로 포착하는 일이지 그 시대를 관념으로 포착해낸 결과들을 숙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고도의 지성을 발휘하는 단계로 올라서도록 자신을 훈련시키는 것이 철학의 과정이지 이미 훈련된 결과들을 금과옥조처럼 품어 안는 것이 철학이 아닙니다.” 저자는 질문이 많은 나라가 선진국이고, 새로운 장르를 시작하는 나라가 선진국이다고 정의한다. 
철학은 국가의 기초라고 했을 때, 우리는 새로워야 함에 동조하면서도 새로워야 할 것들에 대한 방법은 여전히 구태의연한 관행을 따른다. 아이들의 시험문제는 여전히 괄호 속에 용어 집어넣기이고, 선례가 없는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기관의 관행은 여전하다. 
‘나’라는 한 인간이 잘사는지를 묻고 싶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내’가 독립적 주체로서 누군가의 대행자가 아니라 ‘나’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내’가 창조했는지에 대한 성찰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탁월한 사유의 시선」은 창공을 비행하기 위한 나침반 같은 책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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