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경험했던 강강술래는 일정한 틀이 없었다. 선소리꾼만 있으면 자유자재로 원을 그리며 뛰었고 똑같은 동작을 반복해도 지치지 않았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맨 앞사람이 끄는 데로 따라가며 뛰고 또 뛰었다. 
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는 농촌 곳곳에 남아있는 강강술래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지정됐고 그것을 담당할 주체로 우수영과 진도에 강강술래 기능보유자를 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무형문화재 강강술래는 무대화되고 획일화되면서 놀이와는 멀어져갔다. 
우수영 강강술래와 진도 강강술래가 묶여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될 때만 해도 종일 놀 수 있는 강강술래였고 진도와 우수영의 강강술래가 달랐다. 우수영에서도 기능보유자인 김길임 제 강강술래와 김금자 제 강강술래가 별도 존재했다.
그러나 1975년 우수영강강술래는 전국 민속경연대회 출전을 위해 여기저기 전승되던 강강술래 마디를 더하고 더하면서 복잡한 경연용으로 각색됐다. 그리고 이것이 우수영 본래 강강술래로 인식됐고 진도에까지 전래됐다. 진도에 자리한 강강술래전수관에선 70년대 각색된 우수영강강술래를 기계처럼 반복해 가르친다. 또 각 학교와 체험객들에게도 획일화된 강강술래를 가르친다. 놀이가 아닌 1회성 체험으로 끝나는 이유이다. 
해남과 진도 강강술래를 분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이유는 서로 다르게 전승돼야 할 강강술래가 똑같은 내용으로 전승되면서 획일성을 부추기고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해남진도 강강술래 분리는 문화재청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분리 이후이다. 분리 이후에는 우수영 본래 강강술래를 복원하는 일이 남아있다. 또 옛 놀이형 강강술래를 복원하기 위한 다양한 축제도 마련돼야 한다. 명량대첩축제 강강술래 경연대회도 다양한 강강술래가 출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 우수영강강술래가 사랑받기 위해선 다양한 강강술래를 흡수하고 이를 복원하는 일이다. 이럴 때 우수영강강술래는 우리나라 대표 놀이문화로 자리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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