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시전집』  염무웅·임홍배 엮음 /창비

 

 

 김남주는 1974년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해 20년간 활동하면서 500편의 시를 남겼다. 이 중 360편은 10년 가까이 감옥에서 창작했다. 1988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출감한 후 5년 남짓 동안『이 좋은 세상에』를 비롯해 세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1994년 나이 49세, 췌장암으로 그의 시간은 멈췄다. 
2014년 시인 작고 20주년을 맞아 편찬된『김남주 시전집』은 1980년대를 버텨낸 한 개인의 기록이자, 민주주의를 안착시키려 노력한 한 시인의 쓰라림이다.   
그러나 시집을 읽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는 전사 내지 투사의 이미지가 강한 것만큼이나 서정적 감수성도 매우 크다는 것을 말이다. 

《잡아보라고/손목 한번 주지 않던 사람이/ 그 손으로 편지를 써서 보냈다오/ 옥바라지를 해주고 싶어요 허락해주세요// 이리 꼬시고 저리 꼬시고/ 별의별 수작을 다 해도/ 입술 한번 주지 않던 사람이/ 그 입으로 속삭였다오 면회장에 와서/ 기다리겠어요 건강을 소홀히 하지 마세요// 십오년 징역살이를 다 하고 나면/ 내 나이 마흔아홉살/ 이런 사람 기다려 무엇에 쓰겠다는 것일까/ 오년 살고 벌써/ 반백이 다 된 머리를 철창에 기대고/ 사내는 후회하고 있다오/ 어쩌자고 여자 부탁 선 뜻 받아들였던고//》(철창에 기대어)

 시 전집 2부에 실린 시다. 옥중시에 해당한다. 세기의 스캔들이라 불러도 무방한 스토리다. 이 시를 쓸 때만 해도 자신이 출감될 때를 나이 마흔아홉 살로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는 1988년 9년3개월 만에 출감했다. 문인 502명이 서명한 석방 탄원서, PEN 클럽 세계본부인 미국 PEN 클럽 등의 석방촉구 공문 발송 등 당시 전두환 정부에 압박을 가했던 여러 동료들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마흔네 살에 광주 문빈정사에서 오랜 동지이자 약혼자 박광숙과 결혼했다. ‘이리 꼬시고 저리 꼬시고’라는 표현은 능글맞다 못해 천둥벌거숭이처럼 보이기도 하다. 시인의 펜이 굵고 강직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민주주의의 발전사를 두고 혹자들은 희생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김남주 시인에게만은 희생이라는 옥죄임이 또 다른 감옥으로 비춰진다. 그는 희생을 이야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의 시는 그 순간을 사랑한 ‘천진난만한 아이’(사형수 중)의 감성을 지키고자 했다. 
오염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시성(詩性)을 가지고, ‘푸른 옷의 수인’이 돼 지금도 학이 품은 삼산 봉황마을을 차분히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성훈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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