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권력』  고재종 / 문학수첩

 

 “나무는 나무이다가 계절이다가 고독이다가 우주이다가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나무이기에 나무이다” 
거짓으로 예찬한다고 해서 나무가 우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곧이곧대로 나무는 나무다는 엄청난 진리 앞에서 우리는 눈을 감고 지나친 일들이 너무나 많다. 이것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무가 자라서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두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무의 뿌리가 깊다 해서 과거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잎이 촤르르 바람에 떨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현재성에서 나무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사심 없는 시인의 무욕(無慾)이다.
정직에 중독된 시성(詩性)은 대상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를 두고 고심한다. 읽는다는 행위는 오로지 주관성에 토대를 두는 것 아니겠는가. 그 주관성의 베일을 벗기는 작업은 편견, 고정관념을 외따로 배척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사람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러한 철옹성을 벗어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시집은 64편의 시가 적설(積雪) 되어 있다. 가벼운 시어가 처마 밑으로, 도로 양옆으로 무더기로 쌓여 행을 만들고 연을 이루어 하나의 낯설음으로 다가오는 맛을 독자는 느낄 수 있다. 
이숭원 문학평론가는 시 해설의 제목을 ‘그리움의 파란으로 일렁이는 시간’으로 가닥을 잡았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진실성을 최상의 언어 감도로 형상화해 내려는 시인의 전심 어린 노력’을 독자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화자처럼 곧이곧대로 읽기에는, 세속에 젖은 나뭇잎처럼 사는 우리는, 주관성을 너무나 강하게 소유하고 있다.

 이전투구 세상에서, 무뢰배를 쫓아가는 권력의 긴 행렬은 지금껏 있어왔다. 그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나락에서 떨어지는 꽃잎을 두고 권력의 무상함을 노래한 것 또한 많았다. 
수십년 내지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 무릎을 꿇고 찬미할 수 있는 대상은 어쩌면 그대로 ‘꽃’ 하나이지 않을까. 자신의 욕망이 대상에 이입되어 얼기설기 헝클어져 그게 좋아 보였던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를 문답하고 시집을 덮었다.      
한편 고재종 시인의 시집 ‘꽃의 권력’은 2004년 일곱 번째 시집 『쪽빛 문장』다음으로 13년 만이다. 전남 담양 출신인 시인은 1984년 실천문학 신작시집『시여 무기여』에『동구밖 집 열두 식구』등 7편을 발표하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인생의 여로에서 바라본 대상을 시상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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