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가뭄 때는 180개 한나절에 동나
고도리 제일함석 유승복씨 40년간 함석인생

▲ 해남읍 고도리 제일함석 유승복 대표는 함석 양동이 제작부터 함석지붕까지 40년간 함석과 함께했다.

 동네 우물가에 옹기종기 놓여 있던 함석 물동이, 이고 지고 물을 날랐던 추억의 양철 물동이를 제작했던 유승복(72) 씨를 기억하는 이들은 지금도 많다.
플라스틱 재질 양동이와 고무재질 양동이가 나오기 전까지 그의 삶은 함석 물동이와 함께했다. 물동이뿐 아니라 함석 두레박도, 함석지붕도 그의 손을 거쳐 갔다. 
70년대 말까지 민초들의 삶과 함께했던 함석 물동이에 대해 유승복 씨는 종일 만들어도 물량이 달렸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한다.
특히 1968년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종일 180개를 만들었는데 한나절 만에 모두 팔려 나갔다고 한다. 당시는 모두 동네 우물로 식수를 해결할 때라 양동이는 필수품이었고 그것도 가뭄이 든 해는 품귀현상이 심했다는 것이다.  
그는 17살 때부터 함석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는 생활필수품인 함석 물동이가 인기라 주로 물동이를 제작했다. 함석으로 만드는 것이면 뭐든 제작이 가능했던 그는 장모로부터 제일함석을 물려받았다. 40년째 제일함석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장인이 썼던 연장들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함석 양동이가 사라지자 새마을 운동 붐이 일면서 함석지붕과 슬레이트 지붕이 유행했다. 해남의 많은 지붕들이 그의 손길을 거쳐 갔을 만큼 지붕개량에 있어서도 그의 손길은 뛰어났다. 지금도 지붕개량에 그를 찾는 이들이 많다.  

 그는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라 환경문제가 무엇인지, 단어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시절이었다며 웃어 보인다. 함석 양동이를 제작할 때 납땜에 들어갔던 염산과 석면 때문에 철거되는 슬레이트 지붕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함석 양동이를 만들어본 지 30여 년이 지난 2주 전에 우수영초등학교 총동문회 이·취임식 때 필요하다며 제작 주문이 들어왔다. 오랜만에 하는 작업이라 손잡이 부분 치수가 생각이 나지 않아 한참을 애먹었단다. 예전에 반복적으로 해왔던 거라, 손이 먼저 양동이의 질감을 느끼고 치수도 저절로 만들어지더라고 말했다. 

 한번 약속한 일이면 날을 새더라도 지키는 성품 때문에 밤새 양철을 두들겨 물동이 6개를 완성했다. 
지금은 함석 물동이가 공연 소품으로만 사용되지만 예전에 자신이 만든 양동이를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 집을 보곤 한다. 숯을 담은 용도로 사용하는 등 자신이 만든 양동이를 볼 때면 반갑다고 말하는 그는 사람마다 납땜하는 방식이 달라 자신의 작품을 금방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을 가리켜 함석인생이라 말하는 유승복 씨는 40년을 해남읍 고도리에서 보내고 있다. 세월이 흘러 지워진 제일함석 간판을 큰아들이 새로 제작해줬다고 밝힌 그는 지금도 이곳에서 함석 관련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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