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혜민·준호·선호씨
고향 해남은 항상 그립다

▲ 박선영, 혜민, 준호, 선호 씨 4남매는 모두 국악인으로 새해벽두인 지난 4일 함께 무대에 섰다. 가운데는 4남매를 국악인으로 키워준 어머니 김명희씨.

 박준호(35) 씨는 2011년 해남으로 돌아왔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큰 누나 선영, 작은 누나 혜민, 동생 선호는 작은 다짐을 했다. 아버지가 사랑했던 국악을 자신들이 이어가겠다는 바람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님은 4남매를 국악인으로 키우기 위해 모진 세월을 견뎌내야 했다. 해남사람들의 도움과 지지도 있었다. 그리고 4남매는 국악인이 되었고 각각의 무대에서 관객들과 호흡을 하고 있다. 
큰 누나 선영 씨는 대금을 전공한 후 광주예술고 국악과 교사로 재직하고, 작은 누나 혜민 씨는 피리를 전공한 후 전주시립국악단 상임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준호 씨는 판소리를 전공해 현재 진도군립민속예술단 상임단원으로, 쌍둥이 동생 선호 씨는 해금을 전공한 후 국립민속국악원 단원으로 국악인의 인생을 걷고 있다. 4형제가 어린 시절의 다짐을 잊지 않고 지켜가고 있는 것이다. 
4남매를 훌륭하게 키운 김명희 여사는 ‘2016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 상’을 수상했다. 꿈을 이뤘냐는 질문에 그들 4남매는 모두 그렇다고 했다. 적어도 국악인이라는 직업으로는 말이다.

 새해벽두인 1월4일 저녁 7시30분 광주 유스퀘어 문화관 금호아트홀에서 이들 4남매가 무대에 섰다.
이날은 둘째 누이인 박혜민 씨의 피리 태평소 독주회, 다음 주 11일에는 쌍둥이 동생 박선호 씨의 해금 독주회가 열린다. 형제들의 독주회에 나머지 형제들도 무대에 오른다. 
혜민 씨는 이번 공연에서 상령산을 피리로 연주한다. 상령산은 한국의 대표적인 정악합주곡으로, 평조회상 중 첫 번째 곡이다. 특히 피리나 대금 그리고 평조단소 등의 독주곡으로 널리 쓰이고 궁중무용 춘앵전의 반주음악에도 쓰인다. 피리 특유의 긴 호흡과 맺고 풀어 내리는 유장하고 느린 선율은 어떠한 틀에 얽매여 있지 않은 자연스러움으로 관객을 맞는다. 
동생들의 무대에 축하공연 형식으로 서는 큰 누나 선영 씨는 사람이 살아가는 것 역시,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말한다. 인위적으로 덜고 더하는 삶이 아닌 지금의 현재와 본분에 맞는 삶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공연도 하는 삶에서 자신의 예술세계의 지평을 넓히고 싶다고 했다. 그것은 교육을 통한 대화이자 관객을 맞이하는 공연자의 자세라고 했다. 현란한 기교를 부리는 기능인이 아닌, 음의 순간마다 관객과 학생의 표정을 살피고 그 음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고, 그들의 즐거움, 슬픔을 다룰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선호 씨는 해금 독주곡 중에 ‘철새 사철나무 밑동에 둥지 틀다’를 연주한다. 
두 아이가 나눈 이야기라는 컨셉 안에, “철새는 왜 철을 따라 날까? 느낌이 있어 그렇겠지. 아닐 거야 더워도 추워도 텃새는 집에서 살지 않나?/ 철새는 겨울을 지난 고향에 돌아와 잎 푸른 나무 밑동에 둥지를 틀었어. 사철나무에 말이야 더워도 추워도 사철나무는 잎이 변하지 않아 믿을 수 있기 때문일 거야.”   
 준호 씨는 해남에 사는 청년 예술인의 삶을 이야기했다. 해남은 명인 명창이 많이 배출된 고장인데, 젊은 사람이 내려와 지역의 문화를 지키는 것이 쉽지는 않단다. 자신들처럼 어린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에서부터 그들이 타지에서 교육을 받고 다시 귀향해 정착하는 것까지는 긴 시간을 갖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했다. 비록 부족하지만 자신은 그 터전을 마련하는 데 밀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선호 씨 역시 지금 해남에 거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형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뿌리가 해남인인 것을 잊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화원이나 여성문화관에서 해금 강좌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해남군민뿐 아니라 학생들을 지도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4남매는 고향 해남을 그리워한다. 자신들이 국악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해남이라고 했다.  
무언가를 바라는 삶이 아닌, 자신들의 재능을 지역민들에게 베풀며 살고 싶다는 4남매, 4남매의 꿈은 그들이 함께한 무대에서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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