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태정(땅끝문학회 회장)

 시작은 늘 차가움 속의 설렘인 것 같다. 모처럼 땅끝 해맞이로 새해를 시작했다. AI 여파로 공식적인 해맞이 행사는 취소되었지만 그래도 해를 보려는 인파는 땅끝관광호텔을 오르는 언덕길부터 꽉 막혀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언 손을 비벼가며 서서 기다리기를 30여 분, 사람들의 탄성과 함께 수평선 끝 야트막한 섬 위로 해가 떠올랐다. 불과 1분도 되지 않은 시간에 쑥쑥 떠오른 붉은 해는 제 몸체를 모두 드러내고는 수면에 황금빛 그림자를 드리워 놓았다. 그 서늘하고 신선한 빛에 내 몸속의 사악함도 모두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지난해에는 사상 초유의 탄핵과 함께 새 정부가 들어섰다. 뭉뚱그려 적폐라고 하는 지난 정권의 각종 비리들이 사정 당국에 의해 파헤쳐지고 이는 연일 뉴스가 되었다. 국민들은 이에 분개했고, 때로는 사이다 같은 청량함을 느꼈다. 
혼돈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기 위해 마구 휘저어놓은 흙탕물과도 같은 것이다. 이제 구세력의 저항을 동반한 그 혼탁함이 앙금으로 가라앉고 나면 나름의 질서를 잡아갈 것이다. 또 다른 세계는 아픔 없이 열리지 않는다. 

 올 유월에는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부군수의 권한대행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군수를 맞이하게 된다. 해남은 그간 여러 차례 군정 공백이 이어지는 아픔을 겪어 왔다. 그러나 전임 군수의 과오는 번번이 반면교사가 되지 못하고 답습을 이어왔다. 크고 작은 행사장에는 벌써부터 명함을 든 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손을 내밀어온다. 무주공산인 해남의 하늘에서 그들은 이번 새해에 어떤 해를 맞이했을까? 
떠오르는 해를 향해 외치는 사람들의 소망을 압축해보면 건강, 가족의 행복, 부자, 대박, 취업과 같은 것이었다. 올해 그들의 소망은 이뤄질까? 물론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숨 쉬고 물 마시는 일처럼 쉬이 이룰 거라면 굳이 소망이라고 하겠는가? 물론 그들의 비장하지 않은 표정으로 보아 내일이면 잊어버릴 소망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혹 소망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해서 해를 원망하는 사람은 없다. 해가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자신의 바람을 해에게 의탁했을 뿐이다.
많은 이들이 올 유월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내미는 것 같다. 아마도 선거 과정에서 많은 약속들이 넘쳐날 것이다. 

 그러나 약속은 소망과는 다르다. 소망이 일방이라면 약속은 쌍방이다. 잉어가 등용문을 거쳐 용이 되기 위해서는 기나긴 세월의 수양과 거센 폭포를 오르는 수고로움이 동반한다. 
횡포를 부리려고 용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곳에 비를 뿌려주기 위한 목민이 용의 역할이다. 투명하면 공정해진다. 정보를 독점하는 순간, 높은 곳에 오른 순간 권력의 부패는 시작된다. 낮은 곳에 있을 때를 잊지 말자. 새해 해맞이 때 자신과의 약속을 잊지 말자. 
소망은 들어주기만 하면 되지만 약속은 지키는 것이다. 해는 매일 아침 떠오르고 있다.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