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의 글』  알베르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펴냄

 

 가난이라는 굴레에서, 일상적으로 맞부딪치는 인연은 명령을 하거나 복종을 강요하는 세계였다.
 그 세계의 창백한 뺨은 카뮈의 가난한 삶에 입술을 부르트게 했다. 
움찔거리며 달싹이는 언어 속에서 카뮈, 피로감과 지겨움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깨달았다.            
바로 음악이나 예술, 혹은 손에 펜을 쥐고 ‘몽상’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었다. 
몽상에 빠져들 수 있는 적절한 시간대는 석양빛이 어스름이 수수께끼 같은 표정으로 카뮈를 끌어당길 때가 아니었을까. 모든 것이 각박하게 느껴지는 삶이었다. 카뮈는 해설피 ‘나, 젊은이, 노인, 광인 그리고 폐결핵’에 대한 풍경을 속사화 했다. 

 무수한 형태의 삶에서 카뮈는 우선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내 삶과 행복은 내 삶과 행복을 이루는 내용에 대해 눈을 감아버리는 데 있다.” 그는 차라리 광인처럼 현재의 삶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서술했다. “과거의 삶, 미래의 삶, 그 모든 것을 깔아뭉개버리는 현재의 순간”이라 온점을 찍는 우묵한 구절이 눈에 띄었다. 현재에 충실하지 못했던 우리였다. 
놀랄 만큼 시큰한 겨울바람이다. 엉겁결에 계절은 또 흘렀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어쩌다 우리는 하늘을 활공하던 새가 총에 맞아 추락하는 것처럼 불쾌하기도 했다. 
계획이 어그러지고, 옭아맨 꿈이니, 열정이니 하는 말에 현혹된 청춘이기도 했다. 가슴에 얹은 말은 뒤로 미뤘다. 

 “우리는 삶 속에 있다. 삶이 우리를 때리고 훼손하고 우리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삶은 또한 미칠 듯한 행복으로 우리에게 빛을 던져주기도 하고 돌연 우리를 삶에 참여시키기도 한다. 그건 짧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러나 속으면 안 된다. 고통이 여기 있는 것이다.” 
아직 무명이었던 카뮈가 서투르고 불안한 목소리로 자신을 돌아보는 말이기도 했다. 행복과 고통은 삶의 이란성 쌍둥이일지도 모른다. 
카뮈가 대작가가 됐기 때문에 밝혀진 글이었다. 만약 일반인이 이런 글을 쓰고 끝냈다면 그저 몽상을 끼적거린 일기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파리의 화려한 조명을 받고 데뷔한 대작가의 ‘이런 시절’을 읽어보며, 내 삶을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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