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일씨과 함께한 나무들
해남우리신문 400호 기념

▲ 김우일씨와 선인장과의 인연은 30년을 넘는다. 아이들을 위해 키운 나무지만 아이들이 성장한 지금 그의 곁을 지키는 단짝 동무이다.

 선인장이 자랐다. 더욱 뚜렷하게 지금의 키보다 더 바깥으로 볕을 쬐며 선인장은 자랐다. 해남읍 해리 김우일(64) 씨의 집에는 고무나무와 선인장이 있다. 
고무나무의 크기는 140cm 정도, 선인장은 2m를 훌쩍 넘는다.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무렵 고무나무는 친구 집에서, 선인장은 마산면의 농가에서 얻었다. 
1981년부터 2015년까지 통계청 공무원으로 재직한 김 씨는 중간에 조직개편으로 10여 년 정도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 공직생활을 했다. 35년의 공직생활 동안 파란만장한 삶이 있었지만 고무나무와 선인장을 키운 것은 큰 기쁨이었다.

 38살 무렵 남외리 부근에 첫 집을 장만했을 때 선인장은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의 키보다 작았다. 자기 방을 가진다는 기쁨에 펄쩍펄쩍 뛰어다니던 아들은 선인장 가시에 엎어져 찔리기도 했다. 그 뒤로도 천방지축 돌아다니는 아들은 여러 번 선인장 가시 세례를 받았다.  
고무나무 잎이 중학교 딸의 손바닥 크기만 했을 때 김 씨는 좀 더 큰 화분에 옮겨 심었다. 제 옷을 입은 듯 고무나무는 별 탈 없이 컸고 딸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됐다. 이후 김씨는 동초길 쪽으로 한 번 더 이사를 했다. 아들은 군대에 갔고 선인장은 너무 커버린 탓에 두세 번 정도를 잘라 옮겨 심었다.

 딸은 광주에서, 아들은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집은 텅 빈 것 같았다. 김 씨는 자녀들이 번듯한 직장을 잡고 안정적인 삶을 살길 바랐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고무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때론 선인장이 자라는 것처럼 자식들은 제 할 일을 찾아서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제는 초등학교를 다니는 외손자 둘이 고무나무와 선인장을 보며 엄청 크다며 올려다본다.  
김 씨는 고무나무와 선인장이 아이들과 함께 컸다고 말했다. 고무나무가 집에 공기를 맑게 해준다는 생각에 처음에 가져왔고, 선인장은 키가 쑥쑥 자란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아이들도 그렇게 크길 바라는 마음에서 가져왔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고무나무와 선인장도 무럭무럭 자랐다. 아이들이 자란 지금, 아이들 대신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나무들, 나무는 아이들의 성장을 기억하고 또 푸릇푸릇한 아이들의 어릴 적 모습을 불러내 주는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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