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양상군자(梁上君子)란 고사성어(故事成語) 이야기다. 문자 그대로 풀이한다면 ‘대들보 위에 군자’라는 뜻으로 집안에 들어온 도둑을 점잖게 미화하여 부르는 말이다. 나중에는 천장 위의 쥐를 달리 일컫는 말로도 쓰였다.
『후한 말엽, 진식(陳寔)이란 사람이 태구현(太丘縣) 현령(縣令)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그는 늘 겸손한 자세로 현민(縣民)의 고충을 헤아리고 매사를 공정하게 처리함으로써 현민으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모았다.
어느 해 흉년이 들어 현민의 생계가 몹시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진식이 대청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웬 사나이가 몰래 들어와 대들보 위에 숨었다. 도둑이 분명했다. 
진식은 모르는 척하고 독서를 계속하다가 아들과 손자들을 대청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악인이라 해도 모두 본성이 악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습관이 어느덧 성품이 되어 악행을 하게 되느니라. 이를테면 지금 ‘대들보 위에 있는 군자[梁上君子]’도 그렇다.”
그러자 진식의 말에 감동한 도둑이 대들보에서 뛰어내려 마룻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했다. 
진식이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 얼굴을 보아하니 악인은 아닌 것 같다. 오죽이나 어려웠으면 이런 짓을 했겠나.”
진식은 그에게 비단 두 필을 주어 보냈다. 이 일이 알려지자 도둑질을 하는 사람이 없어졌다고 한다.』

 고대(古代)법의 기록을 보면 고조선의 팔조법금에는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는다고 했으며 성경의 십계명에도 도둑질하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다. 함무라비 법전에서는 만약 어떤 지역에서 발생한 절도에 대해 도둑을 잡지 못하면 마을에서 배상하여야 한다는 공동 책임을 명시했고 로마 제국의 12표법(十二表法)에서는 방화범, 절도범, 타인의 경작지에 무단으로 침입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했으니 이런 법들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과한 욕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자들이 존재했다는 방증(傍證)일 것이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사회적 죄악 일곱 가지’를 말했다. 그중 한 가지가 ‘일하지 않고 누리는 부(富)’다. 

 요즘 부정한 방법으로 부(富)를 누리려 했다는 이야기로 세간이 흉흉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해야 할 높으신 분들이 정명(正名)하지 못하고, 가진 것도 모자라 더 가져 보려고 이런저런 술책을 부려 호주머니를 채웠다니 입맛이 개운찮다. ‘뇌물’, ‘상납’, ‘횡령’, ‘청탁’, ‘뭉칫돈’, ‘비자금’… 지면(紙面)에 수두룩한 이런 단어들은 법의 논리에 따라 표현을 달리했을 뿐 까놓고 말한다면 부정한 방법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려 했다는 점에서는 도긴개긴(도찐개찐)이다. 
오장육부조차 채우기 힘들어하는 극빈층들이 얼마나 많은데, 자기네들끼리 주고받았다는 ‘억(億)’ 소리는 국민의 감정을 억하게 하고 삶의 의지마저 오그라지게 한다. 하기야 그들의 논리는 늘 ‘남불내로’(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 법칙)였고 유전무죄였으니…
누군가 “저 사람들은 돈에 걸신(乞神)이 들렸는 모양이요”라고 하더니 보도된 내용이 실체라면 실타래처럼 헝클어진 우리 시대의 단면이요 나아가 부패 물결에 떠내려가는 한국의 모습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국제투명성기구 2016년 순위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 청렴도 순위는 37위에서 52위로 역대 최저로 폭락하여 부패가 더 심해지는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았고 앞으로도 더 추락할 전망이란다. 

 모두가 사람 때문이다. 사람이 길이고 사람만이 희망이라는데 우리는 어찌해 부패로 배가 부른 이들이 우글거리는 모습을 보며 이토록 시린 세월을 살아야 하는지. 
‘양상군자’ 고사성어처럼 저들이 지금이라도 대들보에서 내려와 이마를 찧으며 회개하는 모습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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