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태정(땅끝문학회 회장)

 지난해 문을 열었던 땅끝순례문학관에 대해 말들이 많다. 
문학관의 이름과 전시된 작가들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 요약하자면 문학관 이름에 순례라는 말이 왜 들어가 있느냐는 것과 전시해 놓은 작가들이 해남의 대표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순례란 종교의 발생지, 성인의 무덤이나 거주지와 같이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방문해 참배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땅끝시문학관이나, 해남시문학관 정도면 족하겠다. 굳이 순례란 말을 중간에 집어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문학관은 주제가 선명해야 한다. 이는 문학관의 이름으로 함축이 된다. 
해남은 시의 고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말은 누군가가 억지로 만들어낸 말이 아니고,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통용돼 해남의 이미지로 고착된 것이다. 
전국에 많은 문학관들이 경쟁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빛깔이 없는 문학관은 도태되고 있다. 주제가 선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장 해남다운 게 무엇인가? 그것은 시이다. 끼워 맞추기로 다른 장르까지 가져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전시될 인물은 지역의 대표성과 사회적 지명도를 기준으로 선정해야 한다. 차려진 밥상에 슬그머니 젓가락 올리듯이 해서는 안 된다. 애초 문학관은 해남을 대표하는 4명의 시인으로 출발했다. 그랬던 것이 문학단체 등의 자문을 거치면서 사심이 개입되고 그 범위가 늘어나 백화점식 나열이 돼버렸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문학관이고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문학관이란 말인가?  
지난겨울 전남 지역 문화원 사무국장들이 문학관을 다녀갔다. 패널 위주의 전시물과 전시된 문인들의 대표성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그리고 왜 문인들의 유품이 없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제대로 고증을 거치지 못한 실수도 있었다. 임억령과 관련한 문학지도 부분에서 담양의 식영정을 무안의 식영정으로 잘못 설치해 놓았다. 전시물 전체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대목이다.  
패널 위주의 전시라는 지적은 뼈아프다. 

 문학관의 공간은 문인들의 손때 묻은 유품이 자리해야 한다. 패널은 그 유품들을 설명하는 역할이 주일 텐데, 이 문학관은 패널이 주인공이 돼버렸다. 
유가족을 접촉해 충분히 설득하고 유품을 확보해야 한다. 패널이나 전시하려고 거액을 들여 문학관을 만든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방문객 또한 패널을 보려고 그 먼 길을 오는 것은 아닐 터이다.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생생함이 있어야 한다. 
문학관의 전시 또한 상설전시와 기획전시로 구분해야 한다. 
지금의 전시물은 정리가 돼 있지 않다. 적당히 구색 맞추기식이다. 지금이라도 서둘러 전시물에 대한 전시계획을 다시 세워야 한다. 

 상설전시로는 작고한 문인을 중심으로 이동주, 박성룡, 김남주, 고정희 시인을 배치하고, 기획전시로는 생존해 있는 유명 시인들을 선정해 월 단위로 전시하는 게 바람직하다.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인들이 아쉽다면 기획전시로 다루는 것이 자연스럽다. 
문학관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살아 있는 문학관이 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전국문학인대회 등을 유치하고, 지역 문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야 하며, 학생들을 위한 문학캠프도 마련해 사람이 붐비는 문학관이 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 해남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제일 먼저 문학관을 들러 해남의 문인들과 문학의 흐름을 이해하고 시인 생가 방문 등이 이뤄지도록 하는 구심점이 돼야 한다.   
문학관 기획 단계부터 누누이 강조했지만 문학관은 문학전문 학예사가 배치돼 운영이 돼야 한다. 일은 사람이 하지 건물이 하지 않는다. 전시 계획을 다시 세우게 되면 많은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고 한다. 언제까지 비아냥을 들으면서 버틸 것인가? 해남을 대표할 수 있는 문인 위주로 주제가 선명한 문학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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