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 음악 멋쟁이 김영표씨 
거실엔 노래방기기

 

또 하나의 가족 ‘음악’

▲ 소싯적부터 음악이 너무 좋아 다양한 악기를 다뤘던 김영표씨는 82세에 이른 지금 색소폰 연주에 도전했다.

 소싯적 장구 치고 북 치며 동네를 누볐던 사나이, 방안에는 노래방 기계가 놓여 있고 집안의 장식품은 기타와 레코드 전축, 색소폰, 장구와 북이다. 화장실에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스피커가 설치돼 있다. 차림새도 연예인급이다. 검은색 야구모자 꼭 눌러쓰고 멋을 좀 더 내기 위해 금귀걸이도 했다. 왼쪽 손목에는 시계를 차고 약지에는 반지를 꼈다. 차분한 말투 속에 묻어나온 멋스러움도 중후하다. 
송지면 산정리 김영표(82) 씨, 그런 그가 82세의 나이에 새로운 악기인 색소폰 연주에 도전했다. 다 늙어 뭐하는 짓이냐는 주변의 듣기 싫은 핀잔(?)에도 일주일에 2번 해남실용음악학원(원장 윤길용)에 간다. 선생의 가르침대로 색소폰을 따라 불지만 숨이 가쁘고, 입술도 바싹 마르고 또 퉁퉁 붇기까지 하니 보통 곤욕이 아니다. 그런데도 두 다리 멀쩡하고 젊은 장정 대여섯은 물리칠 수 있는 손아귀 힘도 있다는 사나이의 배포로 색소폰 불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가 가든업과 음식 장사를 한세월도 55년이다. 인천, 거제도 등 팔도강산을 유람하듯 살아온 인생이었다. 7남매를 무탈 없이 키운 것도 복이라 생각되지만, 이제 고생 좀 덜하고 백년해락(百年偕樂) 하려고 마음을 다짐하는 그때, 아내는 생의 촛불을 껐다. 벌써 5~6년이 됐을까. 아내를 향한 그리움은 시간이 흘러도 해갈되지 않는 아픔이었다. 그 아픔 동안 그를 지탱해 준 것은 젊은시절부터 벗이 돼준 음악이었다. 장구면 장구, 북이면 북, 기타 등 다양한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뤘던 그는 노래도 곧잘 불러 그야말로 주변의 연예인이었다. 우정과 사랑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처럼 음악을 향한 우정을 애틋한 사랑으로 키워볼 요량으로 선택한 것이 색소폰이다.
지난 9일, 느긋한 오전의 일과를 색소폰 학원에서 마치고 송지 산정 집으로 돌아온 김영표 씨 댁을 찾았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노래방 기계다. 
다이얼식 노래방 기계 주변에는 기타, 레코드 전축, 색소폰, 장구, 북 등이 걸려 있다. 노년에 화투 치고 술 먹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는 듯 여느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의 손때 묻은 악보 책도 놓여있다.
친구는 죽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지만 음악만은 변하지 않는 세계라고 말하는 김 씨는 언제나 흥이 있는 삶을 산다. 아직 색소폰을 배운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아 운지법이나 호흡법 등을 익히고 있지만, 곧 무대에도 설날을 꿈꾼다. 색소폰을 손에 쥐면 옛적 장구 치고 북 치며 동네를 뛰던 그 젊음이 그대로 살아나는 듯하다. 그는 어깨를 움츠린 해남의 중장년들이 옷깃을 여미고 동구 밖으로 나와 음악과 어울렸으면 좋겠단다. 음악을 좋아하는 중장년들이 즐길 장소가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도 나타냈다.                   

 

김성훈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