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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일본 대리인 세워 해남 통치…거점은 북일지역
박영자 기자  |  hpakh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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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06  15: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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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반도 마한 고대사회 재조명 국제학술대회
북일 일본계통 고분 분포에 대한 해석 ‘눈길’

   
 

 백제가 일본인 대리인을 통해 해남을 통제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12일 열린 ‘해남반도 마한 고대사회 재조명 국제학술대회’에서 인제대학교 이동희 교수는 백제는 한반도 남부 국제교역항의 최대 고객이자 친 백제적인 왜인을 대리인으로 세워 남해안의 해상교역권을 통제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해남반도와 가야, 신라의 교류, 그리고 항시국가(港市國家) 지미(止迷)’라는 주제발표에서 이같이 밝힌 이 교수는 왜인들도 백제를 통한 중국 선진문물의 수용을 위해 한반도 남부의 거점항구가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북일지역에는 다양한 고분군이 존재하는데 대부분 일본계통의 무덤이다. 넓지도 않은 좁은 지역에 왜계 무덤이 집단적으로 조성돼 있는 예는 드물다. 따라서 북일지역에 분포돼 있는 왜 계통의 무덤과 관련해 일본 측은 고대사회 때 일본이 남해안 일대를 지배했다는 임나본부 설을 주장해왔다.  
북일지역의 대표적인 무덤은 방산리에 있는 장고분으로 악기인 장고와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표적인 왜 계통인 전방후원분이다.
이외에도 북일지역에는 원형·네모꼴 무덤과 무덤 주위를 돌로 덮은 신방리 '즙석분'도 발견됐다. 모두 일본계통이다.
해남이 국제사회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것은 4세기 전부터이다. 송지면 군곡리는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 700년 동안 존속한 국제 항구도시였다. 
해남은 서해와 남해의 꼭짓점에 위치한다. 중국 해상상인이 서해안을 따라 왜에 이르려면 해남을 거쳐 가야 했고 왜도 중국을 가기 위해선 반드시 해남을 거쳐 가야 했다. 따라서 송지면 군곡리 세력은 이러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국제교역의 중간 기항지로서 번성을 누렸다. 
그런데 700년 동안 국제항구도시로서 번성을 누렸던 송지면 군곡리 세력은 4세기 이후 자취를 감춘다. 대신 현산면 고현리 일대가 새로운 거점포구로 대두된다. 
현산면 조산과 일평 일대에선 고분이 발견됐고 발굴된 유물도 왜와 가야, 신라 계통인 데다 시기도 4세기부터 5세기까지 이어진다. 특히 조산고분은 왜 계통의 무덤양식이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해남의 해상세력이 바뀌었을까. 백제의 남하정책을 꼽고 있다.
369년 근초고왕 남정 기사에 남녘 오랑캐 침미다례를 도륙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나오는 침미다례는 마한의 마지막 제국으로 송지 군곡리에 위치했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백제는 침미다례의 중심지인 군곡리 세력의 대외교섭권을 박탈하고 이를 대신할 교두보를 현산면 일대에 뒀다는 것이다. 
백제는 이때 해남일대에 해양교역루트를 확보했지만 4세기 말에서 5세기 고구려와의 분쟁으로 남쪽에 대한 직접 통제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해남지역에 대한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6세기 들어 갑자기 북일면 일대 해상세력이 전면에 등장한다. 
이에 대해 이동희 교수는 현산면 일대의 마한 토착세력의 영향을 꼽는다. 현산면 분토지역과 화산면 석호리 일대에선 3~5세기에 걸쳐 장기간 조성된 마한의 취락과 토광묘, 옹관묘, 석곽묘 등이 대거 발굴됐다. 따라서 백제는 토착세력의 영향력이 강했던 현산면 일대보단 토착세력이 미미한 북일면 지역에 새로운 항구도시를 설치해 백제의 남해안 국제교역항 통제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북일권역은 6세기 이전 마한시대 유물은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백제는 토착기반이 약한 북일면 지역으로 교역의 중심지를 이동시키고 당시 최대 고객이자 친백제 세력인 왜인을 대리인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물론 삼산면에 조성된 용두리 고분과 현산면 조산고분도 왜 계통의 무덤이다. 이러한 왜 계통 무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 두 곳도 백제가 국제무역항으로 활용하지만 북일지역과는 차별적인 대우를 했다는 것이다. 차별적인 근거로 북일지역은 신월리 토성과 거칠마토성, 수정봉토성 등 해상세력을 보호할 산성까지 갖추고 있음을 제시했다. 
북일지역에 존재하는 무덤은 왜 계통이지만 원분, 방형분, 전방후원분 등 모양이 제각각이다.  
이에 대해 이동희 교수는 백제는 파견한 왜인 간에 상호 연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출신지가 다른 왜인 집단을 분산시켜 고립적으로 배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당시 왜의 입장에서도 해남은 중요했다. 왜는 4세기까지 금관가야를 통해 선진문물을 취득했는데 고구려 광개토왕의 남하정책으로 금관가야가 쇠퇴하자 새로운 무역항로가 필요했다. 이러한 왜의 선진문물에 대한 욕구 때문에 해남이 5~6세기에 중요한 존재로 떠오르게 됐다는 것이다. 
북일지역에 있었던 왜인세력은 백제의 대리인 역할을 했지만 일정 정도 독자성과 자치권을 누렸다.
이동희 교수는 고대 해상세력들은 악조건 속에서 상품의 안전한 거래를 확신할 수 있는 정치적 중립지역, 자신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재산과 생명을 보호받을 수 있는 교역장을 선호했다고 밝혔다. 또 국제교역장이 속한 정치세력의 수장도 무역으로 얻을 수 있는 이권 때문에 외국 상인들에게 교역에 편리한 환경을 제공하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일본인을 통해 남해안 해상권을 통제하려 했던 백제는 사비시기에 이르러 직접적인 통제에 나선다. 이 시기 해남에도 3개의 현을 설치해 직접 통치에 이른다. 대신 해남을 과거 침미다례 공격의 전초기지였던 강진군에 예속시킨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는 마한의 마지막 제국인 침미다례가 해남에 있었던 것에 대해 공감한 자리였고 중국 및 일본 역사서에 나타난 침미다례, 신미제국, 지미는 모두 같은 의미의 지명으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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