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평전』  김삼웅 저/ 꽃자리 펴냄

 

 김남주 시인 생가 마루에 거리낌 없이 앉아 너른 배추밭 위로 들불처럼 번져가는 노을을 바라본다. 낮과 밤의 경계는 반딧불의 불빛처럼 미비했다가 어느새 화염으로 좀 더 굵은 선을 긋는다.  
시인 김남주가 갖는 현대문학사적 의미는 너무 거창해 논하기도 힘들다. 다만, 머릿속에는 시인의 유언이 맴돌 뿐이다. 
“아름다운 세상, 깨끗한 세상,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하다가 내가 이렇게 빨리 가게 되다니.”
고즈넉한 생가, 이따금 생가를 지나는 트럭의 쿨럭이는 진동이 생가 넘어 느껴진다. 
1994년 시인이 작고하기 세 해 전인 1991년 한길문학 창간을 계기로 생존문인의 생가를 찾는 ‘문학기행’이 진행됐다. 긴 세월 중죄인처럼 신문과 방송에 시쳇말로 ‘불령선인’이었던 그가, 저항시인의 면모로 금의환향이니 그로써는 눈물겨운 날이 아니었을까. 문학하는 사람들에게는 ‘나의 문학과 나의 삶’이라는 그의 강연은 하루 주제일지 모르겠지만, 갑남을녀의 동네 사람들에게는 ‘남주가 내려온다더라’가 행사의 슬로건이었다. 
시인 김남주는 영면했어도, 매년 2월이면 그의 고향 삼산면에서 그의 추모제가, 11월이면 그를 기리는 문학의 밤이 열린다. 
광주교도소 변소를 빼면 0.7평 정도의 규모에서 청춘을 갇힌 시인에게 삶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사람 사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구구절절 시편에 녹아들이면서 그가 끝끝내 펼치려 했던 물음표는 무엇이었을까.
때론 시인의 시어가 입말 좋은 정치인의 언어로 드러나고 시인이 뼈를 삭으며 안은 민초들은 그를 외면했다. 가르마처럼 갈린 논을 허청허청 맨발로 밟으며, 대상을 응시하는 연민이 없는 시대에 사는 것은 아니었을까. 
김삼웅이 쓴『김남주 평전』을 읽을수록, 도랑을 건너 김남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김소월이 “그립다 말을 하니 그립다”는 시어처럼, 그리워졌다. 삶은 치열했으며, 그 치열함에는 거역할 수 없는 역사가 있었다.
역사란 인간이 만드는 것이었고, 그 인간됨을 이끌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시인은 과거에는 육체로써 현존했다면, 현재는 정신으로 계승돼야 할 유산이 됐다. 그의 싸움의 뿌리는 뒤따라오는 세대를 위한 것이었다. 
             

 

김성훈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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