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더 많은 소풍…“느그들 놀았응께 어른들이 놀 차례여”

 

 문화 시설이 거의 없는 섬 아이들, 정부의 도움을 받아 북한 금강산엘 갔던 이야기며 삼성전자에 도움을 요청해 서울 나들이를 했던 이야기, 열린음악회 출연과 한때 매스컴의 관심을 받았던 어불도의 물개 허준의 이야기 등 지난 삶의 이야기가 새록새록 되살아납니다.

당시 섬 아이들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 이곳저곳에 도움을 청했고 그때마다 편지에 이 문구를 넣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사는 어불도는 문화 시설이라곤 달랑 구멍가게가 하나뿐입니다. 마을 이쪽에서 저쪽까지가 500m밖에 되지 않은, 자동차도 없는 마을입니다. 대도시에 가본 적이 없는 아이들, 기차를 타 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태반입니다.”
지난 시절, 섬에서 아이들과 꿈꾸었던 이야기를 부끄럽게 펼칩니다. 

소풍날입니다.
아이들 마음이야 다 그렇겠지만 이곳 아이들은 소풍날을 유난히도 기다립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만에 차를 타고 나들이를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학부모들 모두가 일손을 놓고 장만한 보따리를 한가득 싸 들고 같이 나들이를 하는 날입니다.
이번 소풍은 전북 부안에 있는 ‘원숭이 학교’로 가기로 정했습니다.

아침 7시 50분.
미리 안내한 시간을 지켜 어린이들과 학부모 모두가 어불도 선착장에 모였습니다. 모인 수는 어린이 19명(유치원 포함) 어른 20명입니다. 어른들 숫자가 더 많습니다. 
날씨도 비가 내리고 있어 소풍날로서는 아주 좋은 날입니다. 비가 오면 바다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음 놓고 아이들을 따라나설 수가 있어서입니다.
마을에 도선이 없는 터라 학교의 일이 있을 때면 보통 박순택 회장님의 배를 탑니다. 이곳의 배들은 다 김배(김 작업을 하는 배)입니다. 박 회장님의 배도 김배여서 비를 가릴만한 공간은 없습니다.
그저 둥그렇게 붙어 앉아 우산을 겹쳐 엮어 비 몇 방울이라도 피하려고 해보지만 파도라도 심할 때면 우산조차 쓸 수도 없습니다.
“다 모였소?” 
“다 왔는 모냥이구만” 
“아그들은 가운데 앉아라!” 
“그라고 어른들은 우산을 쓰시오”
비교적 속력이 좋은 박 회장님의 배가 물살을 가르며 전속력으로 달립니다. 튀어 오르는 바닷물과 빗물에 옷은 몽땅 젖었으나 아이들도 어른들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 이곳 풍속도입니다.
차 안!
전년도 회장을 지냈던 고영균 회장이 마이크를 잡습니다. 
“야! 오전은 아그들 소풍, 오후는 어른들 소풍이다” 
“그랑께 오전에는 느그들(아이들) 맘대로 놀아라!”
마이크는 아이들에게 맡겨지고 노래방 기계를 자주 접하지 않은 아이들이라 박자도 맞지 않는 유행가를 신명 나게 부릅니다. 음정이야 박자야 어찌 되었든지 나들이에 이미 신이 났습니다. 
어른들은 자모회에서 준비한 떡이랑 돼지고기랑 토마토랑 이런 것들을 접시에 받아 나누며 이야기로 정을 나누고.
휴게소에 도착하면 목소리 크고 학교 일에 성근진(적극적인) 고 회장이 '야 오줌 싸고 와라!' 이렇게 선생님을 대신해 줍니다.

 

원숭이 학교 견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고 회장이 또 마이크를 잡습니다.
“야! 아그들은 오전에 놀았응께 인자 어른들 놀 차례다”
“느그들(아이들) 저 앞으로 가거라이”
아이들을 앞으로 몰아놓고 어른들 소풍이 시작됩니다.
이런 광경은 육지에선 볼 수 없는 진풍경입니다. 그런데도 어불도 아이들도 적응이 잘 되어서 저희들끼리 잘도 놉니다.
학부모들은 저마다 아껴 두었던 18번 노래를 부릅니다. 이런 분위기를 살리는 데에는 고 회장이 최고입니다. 고 회장과 유치원 자모회장은 이미 머리에 화장지를 두르고 몸을 흔듭니다.
노래는 박 회장이 구성지게 잘 부릅니다.  

돌아오는 길엔 목포에 있는 대형 마트에 들르기로 했습니다. 
목포 시내로 접어듭니다. 
“와따, 차 많네.”
사전 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아이들은 정신이 없습니다.
“저기 사람이 다니는 길을 무엇이라고 하지?”
“너희들 반드시 인도로만 건너야 한다.”
아이들과 나들이를 할 때면 가장 신경을 쓰는 일이 차가 다니는 곳에서의 통행지도입니다. 우리 어불도엔 차가 없고 마을길이라야 고작 500여 미터밖에 되지 않기에 도로 통행 방법에 서툽니다. 그런데다가 신기한 것이라도 보일라치면 금방 아이들이 사라져 여간 신경이 쓰입니다.
마트에 내려놓으니 아이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합니다. 허준이와 경철이는 게임 CD를 샀습니다. 그리고 다가와 자랑을 합니다.
“선생님! 한 개에 몇만 원 짜리를 석장에 만원에 샀어요. 무지 싸요”
아이들마다 가슴에 선물을 품었습니다.
차 속에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아따 그 마트 백화점보다 크구마이”
“뭐시 백화점보다 커! 광주 롯데백화점에 비하면 반쪽도 안되구마는...거그다 내려놓으면 입이 떡 벌어질 것잉마”
“아따 여그까지 왔응께 찜질방 가서 좀 놀다 가제”
“아그들이 있는디?”
“으짠고 아그들은 더 좋아하제”
이런저런 이야기들엔 오랜만의 나들이가 끝나가는 서운함이 곁들어 있습니다.
어란에 도착하니 아침에 비해 바다가 잔잔합니다.
아침처럼 회장의 배에 올라타고 어불도에 도착하니 밤 9시입니다.
유치원 자모회장이 혼자서 하는 말.
“원매 인자 은제 놀러 갈까이. 학교 행사가 없으면 죽고 살고 일만한디”
“인자 또 만들어 봅시다”
고 회장이 소리를 지릅니다.
“한나도 가지 말고 전부 우리 집으로 가서 저녁 먹고 가장께! 선생님들도 갑시다.”
이렇게 2차가 시작되고 정이 오가며 어불도의 밤은 깊어 갑니다.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회장이 마트에서 샀던 수건을 건네줍니다.
“작지만 성의를 받아 주시오”
섬은 이런 곳입니다.
정으로 사는 곳! 정 때문에 사는 곳입니다. 그래서 작은 학교가 아름다운지도 모릅니다.
(2004년 5월 11일)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