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상 희(화산 한국의원 원장)

 일본 해군사관학교 출신의 도고 헤이하치로 해군 제독은 1907년 러시아 발틱 함대와 싸워 이김으로써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러시아는 세계 최고의 제국주의 강대국으로, 발틱함대는 러시아 3대 함대에 속할 정도로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섬나라에 불과한 일본의 함대가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러시아에게 일격을 가한 전투, 그 승리의 주역이었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에게 주위에서 이순신과 같은 위인이라고 칭송하자 그는 “나의 공로를 영국의 넬슨제독에게 비교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으나, 이순신 장군은 따라갈 수가 없다”고 대답했다.
일본 해군제독 도고를 비롯해 많은 해군 장교들이 전투전에 이순신 장군께 승리를 기원하는 신사참배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 일본 해군에서는 매년 이순신을 기념하는 신사참배일이 있다고 한다. 왜일까?
조선건국 후 정도전이 완성한 조선경국대전의 서장에는 ‘백성을 위한 나라, 백성을 근본으로 한 나라, 백성을 두려워할 줄 아는 나라’라는 문구가 있다. 아쉽게도 그의 사상이 사장되었지만 민본정신이 나라의 근간임을 자각한 두 선각자가 있었다. 다름 아닌 이순신과 정약용이다. 
이순신은 필사(必死)와 필생(必生)을 외쳤다. 그럼 필사는 무엇이고 필생은 또 무엇일까? 이순신은 전쟁에서 나라의 사직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것은 백성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임금의 자리를 바르게 함(정보위 正寶位)의 핵심은 바로 민본사상(民本思想)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죽을 것을 각오하고(必死), 백성들을 살려야 함(必生)을 알았다. 백성이 없는 왕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그는 백성을 구원함으로써 왕도 나라도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또한 전쟁후의 불필요한 논쟁까지도 자신의 마지막 길(必死)에 가져가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필사와 필생의 정신이 간직된 곳이 울돌목이다. 우리가 지키고 가꿔야할 불변의 문화유산이다.  
그는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하고 있을 때 조선수군이 칠천량 해전에서 몰살당한 비보를 듣고 울었다. 
이후 선조는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지만 그는 병졸도 배 한 척도 없는 해군 장수였다. 그는 어머니의 상중이었고 곤장을 맞은 장독이 아직 가시지 않은 몸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는 그 유명한 ‘전하,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장계를 올린다. 
그리고 죽을 장소를 찾는다. 첫 번째 장소가 우리의 울돌목이다. 단순히 목숨을 버리려한 것이 아니고 백성은 살리고 자신은 죽으려 한 것이다. 천명을 받들고자 한 것이다. 
그날 울돌목 푸른 앞바다에서 참으로 보잘 것 없는 13척의 조선 수군과 330척의 왜군 함대가 만났다. 절대적 우위를 앞세운 왜군 함대가 좁은 해협으로 들어오자 이순신은 물살을 거스르며 적을 향해 돌진했다. 누가보아도 미친 짓으로 보이는 일이 벌어졌다. 따르는 전함 한 척 없이 왜 함대의 중앙을 향해 돌진한 것이다. 
전남도와 진도군, 해남군은 명량대첩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명랑대첩축제를 매년 개최중이다.
그런데 이곳에 케이블카를 설치한다고 한다. 관광사업도 좋지만 세계적인 해전사 유적지를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된다. 울돌목의 회오리바람을 보기 위해 울돌목의 역사적 경관을 망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잘 보전하고 가꾸어 유네스코 역사 보전지역으로 승인을 받도록 해야 한다. 필사와 필생이 살아 숨 쉬는 민본정신의 교육장으로 삼아야 한다.
명량-울돌목은 단순한 전쟁터가 아니다. 왜 일본 해군 장교들이 신사를 만들어 이순신을 기념하겠는가. 울돌목은 우리 민족의 얼이 살아있는 성지로 남아야 한다.  ‘호남이 없으면 국가가 없다(若無湖南,是無國家)’는 말은 바로 우리의 울돌목을 두고 한 말이다. 
울돌목은 만고불변 해남인의 자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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