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석 천(전 교사)

 “성님, 신문에 연재됐던 어불도 학교 이야기를 읽어본께 무지 재미있습띠다이~. 그란디 성님은 으뜨케 그런 이야기를 모아놨소? 요새는 그것 읽어 보는 재미로 사요. 텔레비만 틀면 듣기도 싫은 이야기로 세상이 시끄런디 오랜만에 성님 이야기가 신선합띠다.”
뜬금없이 무상세월 해촌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해촌의 말처럼 요새 세상이 뭐가 그리 시끄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사회가 시끄럽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 공정한 사회를 위한 노력을 쉬지 않고 있다고도 표현할 수 있겠지요. 
사회 정의(正義)에 대해 학자마다 해석이 다양합니다. 철학자 존 롤즈는 ‘자유롭고 평등한 것’이라 요약했으며 공자와 맹자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올바른 도리’라고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사회 정의란 이해가 상충되는 당사자들 어느 한편을 일방적으로 부당하게 희생시키지 않고, 모든 당사자의 이익을 공정하게 고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공정한 사회란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공직 사회, 권력을 가진 자, 많이 가진 자가 앞서서 노블리스오블리제를 실천해야만 정의사회, 공정사회의 거울이 되겠지요. 정과 부정이 명확히 구분되어야 하고  ‘예’를 해야 할 때는 마땅히 ‘예’하고 ‘아니오’라고 해야 할 때는 ‘아니오’를 해야 하는 것이죠. 한데 요즘 문제가 되어 입에 오르내리는 사회 지도층 인사 중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진다거나 참에는 ‘예’하고 거짓에는 ‘아니요’라는 말을 소신 있게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돈, 권력, 명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고작 ‘검찰에서 성실히 조사받겠습니다.’라는 말로 부끄러움을 가리려 하는 것이겠지요. 
경제는 바닥이라는데, 청년들의 실업 문제가 심각 수준이라는데, 밥만 먹고 나면 당리당략을 위해 쌈질을 하는 분들은 국민들의 바람을 전혀 모르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정치적 행위라고 하는 단식이 동정은커녕 희화화 되는 것은 국민들이 보기에도 민망한 노릇입니다.  
얼마 전 군 의원들이 해외 연수중에 추태를 부렸던 사건이 국민들을 공분시켰습니다. 현지 가이드를 폭행하고 성 접대까지 요구해서 사회적 논란이 됐던 의원 나리들. 이들이 500만 달러. 그러니까 한국 돈으로 56억 원대 소송을 당했다는 뉴스는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요. 조국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고 자존심을 짓밟은 수치스러운 사건이지요. 한데 그 양반들은 자기들의 위치가 군민의 공복(公僕)이라는 기본조차 모르는 모양입니다. 
까놓고 말하면 어디 그들뿐이리오. 
청문회에서 야무지다고 인기를 얻었던 의원이 부동산 투기를 했다느니 지고 일어나지도 못할 만큼 돈이 많은 재벌이 어디에 쌓아두려고 정도를 걷지 않았다는 이야기. 말이 나온 김에, 청와대라는 집터가 그런지 그곳은 왜 그리도 시끄러운지... 
요즘 청년들, “결혼 꼭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나 혼자 살기도 벅찬 시대예요' 라고 한답니다. 흔히 3포 세대라고 하죠. 나아가 5포, 7포, 더 이상 포기할 것조차 없는 N포 세대가  확장되고 있으니 미래가 걱정입니다.
약(略)하고.
사회가 마이너스 시너지효과에 빠져 허우적댑니다.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시대가 도래 했는데 미래는 암울합니다. 
맹자의 말을 되새김해 봅시다. “나라 밖에 적이 없고, 나라 안에 근심이 없는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고 했으니 반대의 목소리는 불편하지만, 경제가 늪에 빠졌지만, 정의가 구겨진 것 같지만 그런 근심으로 인해 성장한다는 말이겠지요. 
사람들은 세상이 어려울 때면 보나파르트의 공상을 통해 어려움을 잊으려합니다. ‘알프스만 넘으면 어여쁜 여자들과 풍부한 음식들이 있겠지’라는 막연한 공상 같은 거죠. 
이 힘든 시기가 맹자의 말처럼 진정약이 되고, 보나파르트의 공상이 현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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