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내면 우수영 김영무 대표
제비처럼 집만 짓고 살았어

▲ 30년 동안 300여 채의 집을 지었을 만큼 우수영 곳곳에는 김영무씨의 손때가 묻은 집들이 많다.

 “문내면 46개 마을회관 중 아마 20개 정도는 제가 지었을 거예요. 우수영에 있는 상가들도 10채가 넘지요. 문내면을 중심으로 인근의 진도, 황산, 화원까지 지으러 다녔지요.”
김영무(65)씨가 30년 동안 지어온 집은 300여 채. 1년 평균 10채 정도를 지은 셈이다. 하도 집을 많이 지어 문내면에서는 그를 제비처럼 집만 짓고 다닌다며 집제비라 불렀다. 
그가 집과 인연을 맺은 것은 스무 살 무렵이다. 당시 마을에 관급공사를 맡던 오너가 있었는데 그의 밑에서 몇 년을 일하다 1980년 전후 독립했다. 학교와 같은 관급공사와 개인주택, 상가 등을 도맡아 지으면서 문내면을 대표하는 건축업자(목수)로 자리 잡게 됐다. 당시만 해도 아이들 숫자가 많아 교실이 부족한 상황이라 증축과 신축이 빈번해 일감은 넘쳤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의 장남들이 그렇듯 한때 집안을 살리기 위해 3년여간 중동을 다녀오기도 했다. 
남들은 30채만 지으면 평생 먹고 산다는데, 그보다 10배인 300채를 짓고도 넉넉히 모아놓은 재산이 없다. 관급공사는 도면대로 시공하고 거기에 맞춰 공사비를 받지만 개인 집은 그렇지 못했다. 도면 청사진을 들고 와서 가장 싼 가격에만 맞춰 공사를 해달라고 하니 골병만 들고 남는 게 없었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건물은 문내성당과 유성식당, 우수영상가 10여 채, 문내주유소 등인데 하도 많아 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의 집짓기는 마루가 있는 전통 한옥 형태의 슬레이트집, 시멘트 기와집 등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20년 전부터는 편리한 아파트식으로 바꿔짓기 시작했다. 한 채 한 채 지을 때마다 연구하고 보완하다 보니 그의 300채 안에는 나이테처럼 건물의 변천사도 함께 하고 있다.  
그에게 집은 자신의 명함이요, 얼굴이었다. 한 번 지으면 평생 얼굴 보고 살아야 하는 고향 동네에서 허투루 지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숙제를 마치지 못한 것처럼 개운치 못했다. 그에게 집은 영원히 풀어가야 할 숙제였다. 
그는 9년 전부터 토건업으로 전향했다. 너무 많은 집을 짓다 보니 골병이 들어 더 이상 집을 짓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모아놓은 큰 재산은 없지만 적게 쓰면 된단다. 
그는 건축업은 스트레스가 심한 직업이라고 했다.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20년 전부터 산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산을 좋아하다보니 해남의 산악회 활동도 하고, 중국의 산, 일본의 산, 백두산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그는 현재 우수영초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다. 올 가을 우수영초 100주년 행사를 앞두고 향우들을 만나러 다니기 바쁘다.「100주년 기념집」발간도 구상하고 있다. 집제비 그가 마음에 짓고 있는 집은 수수함과, 만족, 건강이었다.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