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석 천(전 교사)

 ‘한글’이라고 불리는 우리문자는 창제 당시에는 ‘훈민정음’이라 불리었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한글 창제의 목적이 백성들이 읽고 씀에 불편이 없도록 하고자 하는 애민의 발로였다.
휴대폰 메신저가 일반화된 요즘, 아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나 문자는 난해(難解)하고 불편하다.
시대의 조류가 그렇다고는 하지만, 어른에게도 ‘ㅇㅇ’처럼 자음 한두 개로 답을 보내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문자를 받을 때마다 기본예절마저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은 케케묵은 생각일까?
초기 통신 언어는 ‘ㅇㅇ’나 ‘ㅎㅎ’, 감사를 ‘ㄱㅅ’, 처럼 의사소통을 신속하게 하려고 음운을 줄이거나 초등학생을 ‘초딩’, 선생님을 ‘쌤’, 토요일을 ‘토욜’로 줄여 부르는 정도여서 누구나 대충 이해가 가능했다. 그것이 발전하여 빼박캔트(can't)-빼도 박도 못한다, 노잼- No+재미, 꿀잼-꿀+재미, 솔까(말)-솔직히 까놓고(말해서) 처럼 표현하고자 하는 긴 문장을 과감히 줄여서 표현한 자작어들이 난무하고 있어 도대체 이해가 어렵다. 이런 표현법을 ‘급식체’라고 하는데 학교에서 급식을 먹는 세대들이 주로 사용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또, 직장에서 흔히 사용되는 언어 습관을 지칭하는 급여체라는 표현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급여체의 가장 큰 특징은 영어와 우리말의 혼용이다. 예를 들어, 미팅 등 업무 일정을 조율할 땐 ‘어레인지(Arrange)하다’, 어떤 일을 확실하게 보장할 땐 ‘개런티(Guarantee)하다’ 등의 표현이 그것이다.
이런 경향은 아마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활발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문자 이모티콘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모티콘은 감정(emotion)을 나타내는 아이콘(icon)이라는 뜻으로, 두 단어를 합성한 것이다. 이모티콘이 활용되기 시작한 이후로(^▽^)형태와 같은 특수 문자를 활용한 ‘문자 이모티콘’이 생성되었다. 그것이 발전하여 ‘완소’와 같은 문자도 아니고 이모티콘도 아닌 줄임 문자 표현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이런 표현들은 말의 길이를 줄여 문자를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요즘 아이들은 문자 언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요즘 아이들이 사용하는 문자를 보노라면 세대 간의 벽이 느껴진다. 나아가 ‘이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온전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염려도 된다.
이런 현상을 부추기는 것은 TV예능 프로그램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예능프로그램의 자막을 자세히 살펴보면 통신언어와 은어, 비속한 표현, 어문 규정에 어긋나는 비문법적 표현, 부적절하거나 부정확한 표현, 띄어쓰기 오류, 의도적인 표기 오류 등 한글 오남용 실태가 심각하다.
언어와 문자는 집단의 의사소통의 도구가 됨은 물론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집단 지성의 총체이기도 하다. 모든 지적 행위가 언어로 이루어지며 그것에 축적되고, 구성원들의 가치관까지 언어에 녹아들기 때문이다.
‘너 말 잘하시네여.’처럼 지나친 문법 파괴도 문제다. 어느 초등학생이 ‘집으로 간다’라는 표현을 ‘집으로 퇴장한다. (강퇴한다)’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언어와 문자는 의사소통을 위한 약속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기에 한글 맞춤법 규정이나 통일안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시대의 조류라고 해서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급식체, 급여체, 비속어, 신조어 등의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문자가 통용되고 있는 현실이 우려된다. 지나친 방언의 사용이 의사소통에 장애가 되듯이 마음대로 만들어 바꾸어 쓰는 통신 언어는 의사 전달에 장애가 된다.
우리 아이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와 문자를 한 번쯤 살펴보자. 아이들이 사용하는 문자의 오기(誤記)와 언어의 오용(誤用)을 다듬어주는 것이 어른이라는 교과서가 아닐까? 교육이란 조절능력을 키워주고 이성과 지식과 정신을 올바로 사용하도록 길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급변한다고 해서 이러한 교육의 명제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알퐁스 도데의「마지막 수업」에 있는 명구(名句)를 되새김한다. ‘국민이 설혹 노예의 처지에 빠지더라도 국어만 잘 지키고 있다면 자기가 갇힌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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