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유난히도 안개가 짙었다. 해무 때문에 바다 풍경이 왠지 신비하게까지 느껴지는 날이었다.
점심 전후 쯤 송호해변 모래사장에 무엇인가가 꿈틀거렸다. 저게 뭘까. 꿈틀거리는 기다란 무엇인가에 이끌려 가까이 가보니, 세상에 커다란 구렁이가 아닌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경황이 없다. 구렁이를 처음 발견한 피서객은 급히 해변가 상가를 찾아 구렁이가 나타났다고 외친다. 피서객의 외침을 듣고 송호리 주민 김양순씨가 현장으로 뛰어간다. 정말이다. 바닷가에 살았지만 생전처음 보는 광경이다. 그도 경황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도 없다. 이장에게 급히 연락해 바닷가로 오라고 재촉할 수밖에.
김씨의 연락을 받은 박응주(53)이장도 커다란 구렁이 앞에서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동네사람 배광섭씨를 부른다.
황구렁이 주변으로 동네 사람들과 관광객들은 몰려들고. 인파속에서 배광섭씨는 황구렁이를 소중히 포대에 담는다.
그리고 박 이장과 함께 마을 뒷산으로 향했다. 워낙 소중하고 신령한 동물이라 누군가 방생하는 장소를 알면 안 될 것 같아 둘만이 몰래 갔다. 그리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 건강히 살라는 말과 함께 황구렁이를 놓아주었다.
송호해변에 황구렁이가 나타났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동네 사람들은 방생해 줬다는 말을 듣고 동네에 많은 복이 올 징조라며 너도나도 칭찬하고 나섰다.
이 말을 전해들은 어떤 무당은 엄청 무서운 말을 남긴다. 황구렁이가 송호리에 나타난 것은 마을 사람들을 시험하기 위해서란다. 다행히 방생을 해줘 마을에 복이 올 것이지만 그렇지 않았을 경우에는 마을주민들이 떼죽음을 당했을 것이란다. 이 말을 전해들은 박 이장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린다.
1.5m짜리 황구렁이가 송호해변에 나타난 것은 지난달 30일이었다. 아마도 섬 어느 곳에선가 이곳으로 떠밀러 온 듯하다.
황구렁이가 발견된 이틀 후인 7월 2일은 송호해변 개장식 행사 중 주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용왕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피서객들의 안전과 바다로 떠나는 선박의 안전 및 풍어를 기원하는 용왕제. 용왕제가 열리는 이틀 전에 황구렁이가 바닷가에 나타난 것은 상서러운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게 동네사람들의 믿음이다. 그리고 황구렁이 덕분에 올해는 송호해변에 많은 피서객들이 찾고 안전한 피서가 될 것이란 믿음도 컸다.
송호해변 생긴 이래 처음 나타난 황구렁이. 마을의 수호신이 돼 동네에 많은 복을 가져다 줄 것이란다.
한편 황구렁이는 환경부에서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황구렁이는 과거 산업이 발전하기 이전에는 농가 근처에서 많이 살았다고 한다.
김희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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