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민초의 아픔 껴안아
한국무용가 김영자씨

거리의 춤꾼 한국무용가 김영자씨는 화려한 무대를 내려와 거리에서 시위대열에서 춤을 추며 30년 무용인생을 살고 있다. (목포 신항 세월호 선체 앞에서 7주기 기억식 공연)
거리의 춤꾼 한국무용가 김영자씨는 화려한 무대를 내려와 거리에서 시위대열에서 춤을 추며 30년 무용인생을 살고 있다. (목포 신항 세월호 선체 앞에서 7주기 기억식 공연)

 

 거리의 춤꾼 한국무용가 김영자씨는 여전히 거리에서 춤을 추고 있다. 올해도 목포에서 열린 세월호 기억식, 대구에서 열린 남북철도잇기 행사, 제주 강정마을 평화집회, 목포 5‧18기념 행사 등 시대의 아픔을 껴안는 현장에는 그녀가 있다.
 80년대 민중예술이 등장하면서 예술인들은 몸짓으로 붓으로 시대에 맞섰다. 한국무용가 김영자씨의 춤은 여전히 80년대를 관통하고 있다. 화려한 무대에서 내려온 그의 춤 인생도 벌써 30년을 맞았다. 시대의 아픔을 껴안은 춤꾼. 김영자씨는 90년대부터 민중 속에서 춤을 췄다. 그래서 삶은 더 고달팠다.
 그는 “한번 춤을 추고 나면 생명이 줄어드는 느낌이 들 정도로 혼을 다해 하다 보니 늘 3일 정도는 아프지만 시대의 아픔에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이다”고 말했다.
 우수영 출신인 그녀는 해남으로 귀향했던 1990년대에 해남여성회관과 면사무소, 문화예술회관과 복지시설 등에서 한국무용을 지도했다.
 춤은 전문가만 추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춤출 권리가 있다며 해남에 한국무용 대중화를 일으켰다. 이때부터 해남에는 주부무용단의 활동이 시작되고 한국무용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해남에는 새로운 무용시대가 열렸지만 그는 여전히 외롭고 힘든 거리에서 춤을 춘다.
 그는 농민들의 생존권, 공평한 세상을 위해서도 춤을 췄다. 그가 원하는 세상은 밝은 세상, 공평한 세상이다.
 거리공연에 필요한 안무부터 음악, 소품 등 모든 것을 혼자 준비한다. 공연료와 상관없이 마음이 향하는 대로 발길을 이끈다.
김영자 춤꾼은 발에 피가 나도 맨발 공연을 고집한다. 아픔에 대한 공유, 유족에 대한 예의, 한 시대를 온전히 품기 위해서다.
 그는 고 임이조 선생에게 한국무용을, 고 박관용 선생에게 진도북춤을, 김원춘 선생에게 민속무용을 사사받았다. 또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춤을 추는 춤꾼이 되고자 목포대에서 민속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현재 주민자치회, 문화원 등에서 강의하며 북춤, 살풀이, 승무, 강강술래를 주종목으로 20여개 춤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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