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일기 쓰고 영수증도, 문내 고전리 김현술씨

문내면 고전리 김현술 어르신은 지난 50년 동안 매일 일기를 쓰고, 계좌이체증, 전기세 고지서, 대출납입증명서, 전화세 영수증 등 다양한 영수증을 모두 모아 보관하고 있다. 
 

 

 문내면 고전리 김현술(75) 어르신은 문내에서 ‘컴퓨터’, ‘김영수증’, ‘김기록’이라 불린다. 이렇게 불리는 데는 지난 50년 동안 해온 독특한 습관 때문이다.
김씨는 50년 세월 동안 일기를 썼다. 또 계좌이체증, 전기세 고지서, 대출납입증명서, 전화세 영수증 등 다양한 영수증을 모두 모아 보관한다. 이렇게 쌓인 일기장이 34권, 각종 영수증철이 5권이다. 
그의 사전에 영수증이 없으면 돈이 나가는 법이 없다. 면사무소에서 이자를 갚으면 납입영수증, 농협주유소에서 기름 넣으면 영수증을 받는다. 
김씨는 “예전에는 마을로 직원들이 이자를 받으러 다녔다. 술 먹고 기록을 안 해놓고 안 받았다 하면 팔짝 뛸 노릇이다. 그럴 때 딱 일기장과 영수증을 내밀면 다른 말이 필요 없다”며 “정확하게 서류로 증명하다 보니 컴퓨터라고 소문났다”고 말했다. 
그의 꼼꼼한 성격만큼이나 영수증 정리가 정확하다. 글씨도 정자체로 잘 써 보기 좋게 정리돼 있다. 
그의 오랜 습관은 26살이었던 청년 김현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1972년 갑작스럽게 부친이 작고하시고 엄청난 부채를 떠안게 된 26살 장남은 삶이 흔들렸다. 그는 모든 부채 내력을 확인했고, 꿈이었던 교사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이장이었던 아버지 앞으로 마을사람들의 대출까지 있었지만, 당사자가 작고하니 그것을 밝힐 길이 없었다. 그때 집과 운영 중인 정미소를 합쳐도 빚이 5배 반이나 될 정도로 액수가 컸다.
김씨는 “증명할 방도가 없어 그 긴 세월 힘들었기 때문에 모든 걸 기록하고 문서로 남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1964년도에 광주 농고를 갈 정도로 마을에서는 수재였다. 동네에서 3번째로 유학을 갔기 때문에 기대도 많았다. 
긴긴 세월 힘들고 어려웠지만 선산이 있는 동네, 뿌리를 떠날 수 없었다. 아버지를 욕보이고 싶지 않았고, 4형제가 달라붙어 정미소를 운영해 10년 동안 빚을 갚았다. 
그는 마을 일이라면 앞장서왔지만, 오랫동안 부채를 갚았던 기억에 이장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현재 마을 개발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씨는 “이 일기장들을 볼 때면 마음도 아프지만, 내 자신이 참 대견하다. 꿋꿋이 버틴 세월이 대단하다”며 “죽을 때까지 갚아도 못 갚는다는 말도 들었고 그냥 도망가라는 사람도 있었다. 눈물 난다. 결국 그 많은 빚을 다 갚았지”라며 세월을 회상했다. 
그의 일기는 농사일지이기도 하다. 매년 이맘때쯤 어떤 농사일을 했고, 작년 가격은 얼마에 팔았는지 비교한다. 주먹구구식으로 농사를 짓는 게 아니다. 매년 예산을 세우고, 얼마가 남는지 계산해 농사 수익이 예상 된다. 
그는 기억력도 남다르다. 동네 주민들이 언제 돌아가셨는지 기억하고, 마을 가족친지 간 촌수, 어느 마을 누가 이장을 언제 했는지도 모두 기억한다. 그래서 그를 ‘컴퓨터’라 부른다. 머리에 입력된 전화번호는 50개 이상, 마을 주민들 차 번호도 웬만하면 다 외운다.
김씨는 일기를 50년 동안 써왔으면 이제는 그만 좀 쓰라는 말도 듣지만, 이미 인생의 습관이 됐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매일, 오늘을 기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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