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박혁 기자 퇴임, 해남기자 중 최장수 활동

무등일보 박혁 기자가 33년 간의 기자생활을 마감하고 퇴임했다. 
무등일보 박혁 기자가 33년 간의 기자생활을 마감하고 퇴임했다. 

 

 “1993년 7월26일 아시아나 항공 보잉 737기가 화원면 마산 골짜기에 추락할 당시 해남경찰서 서장실에 있었다. 비행기 추락사고가 당국에 보고됐을 때 사고 지점을 알지 못했고 내가 비행기 항로상 화원면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았다. 전국 기자 중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은 참혹했고 화원면 주민들의 구조활동과 희생정신은 대단했다. 무등일보 본사에서 사진기자들이 급파돼 왔다. 현장사진을 촬영한 기자들은 속보를 내기 위해 급히 광주로 향하던 중 황산면에서 버스와 추돌해 사진기자 1명이 사망했다” 
33년 간 해남현장을 누볐던 무등일보 박혁기자가 3월31일을 마지막으로 기자생활을 마감했다. 해남에서 활동한 기자 중 가장 오랜 기자생활이었고 무등일보에서도 가장 장수한 기자로 기록됐다. 
33년간 그는 아시아나 항공 추락사건을 비롯한 숱한 현장을 목격하고 기사화했다. 해남의 역사가 차곡차곡 그의 손에 의해 전달되고 축적된 것이다. 
그는 1990년 2월부터 무등일보 해남지사를 운영했다. 
당시만 해도 면단위에 6개의 지국이 있었고 해남읍 지사에는 배달 오토바이 여섯 대가 신문을 싣고 새벽을 누비던 때였다.
그가 가장 잊지 못한 기사는 1990년도 북창정미소 양곡사건이다. 쌀에 콩기름을 입혀 가공해 판매했던 북창정미소 양곡 사건은 전국 양곡 도정에 일대 변화를 불러온 사건이었다. 
그는 정미소 화물기사로부터 제보를 받은 후 본사 기자들과 함께 현장을 급습했다. 사건이 워낙 위중해 급습현장에 검사도 함께했다.
정미소 천정에서 숱한 빈 콩기름병이 발견됐던 현장은 무등일보 1면 톱에 보도됐고 이는 전국의 양곡도정공장 조사로 이어졌다. 그는 워낙 큰 사건이고 그것도 쌀 생산지 해남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보도하는데 고민도 컸다며 그러나 양곡 도정과정에 변화가 일어야 한다는 소신으로 신문보도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도 잊지 못한다. 
그는 한일월드컵 개최를 홍보하기 위해 해남 조기축구단과 함께 유럽 5개국을 방문했다. 직접 밥을 해먹고 교민들의 안내를 받으며 각국을 순방할 때 교민들에게 김과 쌀, 고구마 등을 선물했다. 
그런데 교민 중 선물 받은 고구마를 구워서 급냉동 시킨 후 해동해서 먹어본 이가 있었다. 당도가 달랐다. 
이에 박혁 기자는 고구마 농가에 이 사실을 알렸고 이후 해남고구마가 찌고 구워 냉동한채 유럽으로 수출하는 길이 열렸다. 이는 지금의 아이스고구마로 이어졌다. 
해남농수산물 수출길을 열기 위해 그는 유럽 3번 방문에 이어 미국도 다녀왔다. 그의 노력으로 해남 김과 쌀, 고구마의 유럽 수출길이 열렸다. 
그가 해남현장을 누볐던 30여년 만큼 지역에 대한 그의 애정도 커갔다. 따라서 그는 해남 내에서 해결 가능한 일은 보도를 자재해왔다. 신문보도도 중요하지만 군민 간의 화합, 갈등 조정의 힘이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후배들에게 해남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인내를 가지고 지켜보는 자세, 갈등보단 공동체를 생각하는 자세가 우선됐으면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단다.
33년간의 기자생활을 접고 이제는 지역의 문화예술분야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그는 전국의  문화예술인들에게 해남을 소개하고 그들의 손에 의해 해남의 이야기가 글로, 그림으로 표현되길 원한다. 그는 해남에는 행촌미술관과 인문학 공간인 토문재, 임하도 작가 레시던스 등 개인이 운영하는 인문공간이 있다며 이러한 공간이 활기를 찾는데도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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